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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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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이야기

bakingbook 2013. 5. 22. 16:46

 

위대한개츠비 위대한 이야기

피츠제랄드 원작의 위대한 개츠비가 디카프리오주연으로 개봉되었다는군

오래간만의 영화관람을 위해 가족출동하였다. 그전에 코다리 냉면 집에서 냉면을 먹으면서 대니와 엄마는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했다.

"미국작가 피츠제랄드의 유명한 소설인데 개츠비라는 남자는 젊을적 사랑하던 여자와 가난때문에 헤어져서 떠났어 그이후 여자는 부유한 남자랑 결혼했는데 문제가 있는 남자여서 불행해

그런데 개츠비가 엄청난 부자가 되어 돌아와서 여자를 되찾을려 하는거야 하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 미국의 이차대전후 금주시대 이야기라 클랙식한 느낌일거구 감독이 로미오와 줄리엣 무랑루즈의 바즈루어만으로 영상이 화려할거야. 제작비도 많이 이 들였고 배우들도 좋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느낌일거야 예전에 개츠비역할은 로버트래드포드였어. 당대의 미남배우만 맡는 역할이지 "

 

그러자 대니가 말했다.

"로버트레드포드를 직접 본적있어 정말 멋있어. "

그렇다. 짧은 이야기만으로 그 이야기 그리고 소설속에서 또렷히 형상화했던 개츠비라는 캐릭터를 다 설명할 수없다. 아련한 그리움을 느끼게 되는 인물 개츠비의 마지막을 이야기할 수없었다. 그것은 그 이야기의 핵심이니까.

무의미하게 돌을 굴려올리던 시지푸스처럼 영웅이추구하던 목적이 무의미한것이었더라도 살아가야하는것이 삶이아니던가. 그가 보톹사람과 다른점은 그 의미가 살라지명 자신이 파괴된다는 것이겠고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희망의 불빛을 지치지않고 본다는것이겠지.

1920년대 뉴욕과 그 사이를 떠도는 남자의 야망과 사랑, 성공과 몰락의 일대기를 그려낸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베스트셀러였고, 21세기에도 그 명성을 이어가는 스테디셀러이다

 

영화는 작가를 연상시키는 화자 닉(토비맥과이어)의 해설로 시작된다. 초반의

유리꽃같이 아름답지만 부서지기 쉬운 데이지와 돈으로 모든것을 해결해온 속물적인 남편 등 주변인물의 소개에도 불구하고 개츠비의 등장이 늦어지자 초조하다. 이 이야기의 시작이나 끝인데 화려한 쇼속에서 묻혀버리다니.

하지만 그가 살인적인미소를 띄며 등장하고 닉에게 조카인 데이지와 차를 마셔달라는 소박한 부탁을 하면서 나는 만족하였다.

소설과 다르지만 소설 속에 부족한 부분 혹은 예전 영화에서 부족했던 상업적 풍부함과 안락한 계급 산업화의 그늘 그리고 그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주인공의 불안감이 현기증나게 표현되었다고 느껴졌다.

해외이사문제로 책꽂이를 정리하면서 내가 이토록 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던가 하고 놀랐다. 이제 디지틀시대로 접어들면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 되었고 어릴적 그렇게 탐독하던 고전은 쳐다보지도 않게되었다.

그시절 기억나는 이야기들 향기가 나는 고전 소설 중 잊혀지지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작가의 필력이 어떻든 연출자의 스타일 배우의 연기와상관없이 잊을 수없는 스토리

위고의 <장발장 ><두도시이야기 >그리고 <위대한 유산 ><위대한 유산>도 주인공이 추구하던 사랑과 그 의미없음과 유사하게 위대한 개츠비도 허망한 결말이라 느껴질 것이다, 그가 쥐려고하던 빛나던 그린라이트는 실체가 없고 쥐면바스라지는 것이다.

개츠비의 맹목적인 사랑의 대상 데이지는그가 생각하는 순순한 사랑의 결정체가 아니기때문이다. 그녀도 뿌리 없는 미국의 역사 처럼 상류계급의 부박함을 가진 여자로 안락함을 사랑과 바꾸지 않을 것이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돈으로 도망갈 것이다.

 

개츠비의 장례식날 닉이 내레이션하듯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은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에 의해 다른사람을 파괴시켜버리고 돈으로 숨어버린다.'

피츠제랄라드의 이야기는 쓸쓸하다.그의 다른 이야기처럼. 그래서 나는 , 이야기는 잊혀지지않으나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개츠비에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많이 그것이 소설의 결말과 다른 주제로 만들어버렸다. 데이지를 기다리며 도망치지않고 기다리던

개츠비가 죽기전 울리던 전화 벨 소리. 데이지라는 착각을 가지고 개츠비가 죽었기에 개츠비에게 데이지는 영원한 그의 보석으로 남는다.

현실은 그 전화는 닉의 전화였고 데이지와 남편은 그들의 허물을 남에게 덮어버리고 일말의 가책도 없이 도망가버린다.

하려한 파티로 웅성이던 개츠비의 저택에는 닉만이 장례식에 남아있다.

 

잭 클레이턴이 연출하고, 로버트 레드퍼드가 개츠비를 미야패로우가 데이지를 연기한 1974년

<위대한 개츠비>는 화려한 눈요기보다는 로버트레드포드와 미야패로우의 관계등 인물에 중점을 둔 영화였던것으로 가억한다, 그에 앞서 1926년 허버트 브레넌 감독에 의해 흑백 무성영화로 제작된 이후 1949년 엘리엇 누젠트 감독이 연출한 버전, 2000년 영국 TV 드라마 버전도 있다. 2013년 <위대한 개츠비>는 바즈 루어만 감독 레오나르드 디카프리오의 개츠비다.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 2001년 <물랑 루즈>, 2008년 고풍스러운 대작 <오스트레일리아>를 통해 아름다운 풍광 속 시대를 담아내었던 바즈 루어만의 21세기 ‘개츠비’는 로맨스 블록버스터 3D이다. 한편으로는 대형 스튜디오 시대의 영화의 재림을 보는것 같기도하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쓸쓸하고 퇴폐적인 소설의 분위기는 그래서 다르고 전체적인 주제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영화속 1920년대의 뉴욕은 <물랑 루즈>의 파리만큼이나 화려하고 낯설다.

부유층이 산다는 롱아릴랜드와 슬럼가의 극명한 대조 그리고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대조 롱아릴랜드는 소비하고 타락하고 현란하지만 이기적이고 부박하고 허망하다.

석탄산업이 밀집한 슬럼가는 까맣고 피로하고 가난하지만 부박하지않다, 아니 어쩌면 관계에 집착하여 파괴된다. 월슨의 아내가 데이지의 남편에 집착하여 자동차 사고가 나는 것도 월슨이 바람난 아내의 죽음을 복수하려고 하는것도 다 너무 다정해서이다. 개츠비도 서부에서 온 닉도 뉴요커의 차가움이 없다. 그들은 다 관계에 집착하여 무건을 사듯 사람의 감정을 살 수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데이지의 공간과는 다르다. 작가인 피츠제랄드이 소설은 그래서 차갑고 허망한 반면 바즈루어만은 뜨겁고 연민으로 가득하다.

1925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이 된 이유는, 2차 대전 이후 주가가 폭등하여 돈이 흘러넘치고 자유분방하며 재즈와 파티가 연일 이어지는 과잉의 도시,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사람들이 모이는 신기루였던 당시의 사회상을 개츠비라는 로맨티스트의 사랑에 대비해 담아냈기 때문이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원작을 그대로 담아냈지만 원작의 쓸쓸함보다는 테크니션으로서의 현란함이 돋보였다.그런데 그 현란함이 개츠비의 죽음을 더욱 쓸쓸하게 보이게 한다. 방면 문학적 여운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무려면 어때 각기 다른 스타일일뿐인데.

1. 바즈루어만이 도입부에 수다를 너무 많이 떨었다. 개츠비를 신화적으로 만들려 한것일까. 개츠비는 바람처럼 왔다 간 것같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개츠비는 잊혀지지않는 위대한 이야기다.

3. 영화를 보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않는 대니가 속삭였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