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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The Black Swan)/대런아르노프스키 본문

Movie

블랙 스완(The Black Swan)/대런아르노프스키

bakingbook 2011. 2. 25. 22:14

블랙 스완
STAFF 감독ㆍ대런 아로노프스키 | 각본ㆍ마크 헤이먼, 안드레스 하인즈, 존 J. 맥러플린
CAST 니나ㆍ나탈리 포트먼 | 릴리ㆍ밀라 쿠니스 | 토마스ㆍ벵상 카셀
DETAIL 러닝타임ㆍ103분

줄거리: 뉴욕 발레단의 니나(나탈리 포트만)은 연약한지만 순수하고 전직 발레리나 출신인 엄마 에리카(바바라 허쉬)의 총애를 받으며 인생의 모든 것을 발레에 바치고 있다. 에리카는 니나를 최고의 발레리나를 만들기 위해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끊임없이 채근한다.
한편, 예술 감독 토마스 리로이(뱅상 카셀)는 프리마돈나 베스(위노나 라이더)를 새로운 시즌의 오프닝 작품 '백조의 호수'에서 강판시키기로 결정, 니나를 제1후보로 올린다. 그리고 마침내, ‘백조’와 ‘흑조’라는 상반된 성격의 1인 2역을 연기해야 하는 ‘백조의 호수’의 프리 마돈나로 발탁된 니나. 하지만, 순수하고 나약한 ‘백조’ 연기는 완벽하게 소화해내지만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를 연기하는 데에는 어딘지 불안한 니나. 게다가 새로 입단한 릴리(밀라 쿠니스)는, 니나처럼 정교한 테크닉은 없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미로 은근히 비교 대상이 된다.
점차 스타덤에 대한 압박과 이 세상의 모두가 자신을 파괴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니나. 급기야 그녀의 성공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던 엄마마저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한 상황에서 그녀는 내면에 감춰진 어두운 면을 서서히 표출하기 시작하는데…

2010년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 이래 평단과 관객의 기립 박수를 받은 <블랙 스완>은 발레와 스릴러 장르의 결합을 통해 시종일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다. 영화 배경이 화려한 발레세계라고 하나 제작비 많이 드는 군무나 세트는 보이지 않았다. 핸드 헬드 카메라 워크로 주인공의 강박관념을 표현하는 방식과 붉은 색 피의 개념 그리고 도플갱어 같은 여주인공의 자아 설정은 스탠리큐브릭의 < 샤이닝>을 연상시켜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블랙스완>은 심리 스릴러이지만, 세부 사항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실주의적인 카메라 촬영 방식, 배우들에게서 사실적인 연기를 이끌어내는 작업 방식과 같은 감독의 특성으로 <샤이닝> 과 차별된다. 게다가 <샤이닝>은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유령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한 스테디캠이니, 일인칭 여주인공의 시점으로보여지는 핸드핼드 카메라의 <블랙스완>스타일과는 다르다. 오히려 신체적인 극한 상태와 정신적인 고뇌를 다루는 주제, 등장인물의 흥미로운 내면 세계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면에서 감독의 전작 <더 레슬러>와 비슷하다.

또한 <블랙스완>은 육체적으로 엄청난 노력과 예술성이 필요한 발레단을 배경으로 정신 분열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발레리나의 모습을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낸다는 점에서 범죄 세계나 유령의 집이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 영화와는 다르다.

발레영화의 걸작<분홍신>에서 발레세계를 다룰때는 웅장한 음악과 발레공연이 주가 되어, 정통적인 기법의 영화로 다소지루할 수도 있는 테마를 다루게 된다. 탐미적인 예술 세계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이라는 주제 자체가 자칫 예술 지향의 영화가 되어 대중성과 유리될 수 있는데 대런은

스릴러 장르의 스타일을 빌어 주제를 표현함으로 대중성을 획득했다. 이유는 대런감독이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능숙하게 다루는데다가 예술영화의 향기까지 고스란히 집어 넣을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발레 '백조의 호수'의 음악은 내가 아주 어릴적 태어나기 전부터 집에 있던 오르골에서 늘 흘러나오던 음악이다. (예전에 깨져서 지금은 없다.)

시계 모양의 그 오르골은 아래쪽의 태엽을 감으면 백조의 호수가 감은 만큼 울려나왔다. 아주 친근하고 아름다운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렇듯‘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코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손꼽히는 ‘백조의 호수’는 일반인에게는도 가장 유명한 발레 작품이다. , 순수한 오데트(백조)와 악마의 화신인 오딜(흑조)을 한 사람의 발레리나가 연기해야 하는 것. 때문에 많은 발레리나에게 있어 ‘백조의 호수’ 프리마돈나를 맡는다는 것은 동경의 대상이자, 난이도가 가장 높은 연기에의 도전이라고 발레인들이 입을 모으고 있는데 세계 정상의 발레단에서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발탁된다면 그 기쁨과 고뇌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명곡 ' 백조의 호수'를 모티브로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완벽한 커리어 구축을 위한 열정, 실패에 대한 두려움, 홀로 서기, 부모와의 갈등, 性에의 탐구와 흥미 등을 둘러싼 스릴러 장르의 스타일로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영화를 만든 각본과 연기 연출 삼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된 영화로 아마도 후세에 명작의 대열에 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유는 이 영화가 굉장히 쑈킹하거나 굉장히 재밌거나 굉장히 새롭지 않았으나, 보고 난후 여운이 아주 오래동안 남아있기때문이다. 그것은 고전의 속성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의 단련을 거쳐야 예술 작품은 고전으로 남는다.

감독은 ‘백조’와 ‘흑조’라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나탈리 포트만과 밀라 쿠니스의 라이벌 대결을 통해 극중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여기에 냉철한 감독 뱅상 카셀과 위압적인 어머니 바바라 허쉬 등 배우들이 제 역할을 하며 영화를 받쳐주고 있다. 즉 영화의 하모니가 좋다는 것.



주연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은 10개월 동안 매일 8시간씩의 강도 높은 훈련과 9kg의 체중 감량이라는 가혹한 트레이닝을 거쳐 발레리나 특유의 연약하면서도 잔근육의 몸을 만들고, 극중 발레 씬의 대부분을 직접 연기해냈다. 1994년 <레옹>의 주연으로 데뷔한 이래 2005년 <클로저>로 골든 글로브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지만, 이 정도로 연기에 대해 극찬받은 적은 없었다. 특히, 영화 초반 예술 감독을 맡은 뱅상 카셀이 니나(나탈리 포트만)를 향해 ‘흑조’의 관능적인 즉흥성은 없고, 순수하고 나약한 ‘백조’의 모습만 보인다고 다그치는 대사는 고스란히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실제로 그동안의 나탈리 포트만은 부드럽고 연약한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던 탓에 종종 캐릭터의 긴장감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한다. 하지만 <블랙 스완>의 니나라는 극도로 파리하고 연약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그녀는 특유의 어린 목소리를 평소보다 하이톤으로 발성, 차츰 판단력을 잃어가는 캐릭터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이 때문에 그녀의 연기는 깨질듯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I Was perfect"라고 외쳤을 때 균열이 가던 거울이 와장창 깨졌다가 마치 플래쉬 백처럼 도로 통합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고 슬픔의 기운이 흘러갔다. 자신을 고스란히 예술의 재단에 희생양으로 바친 연약한 발레리나의 한마디였다.


<레퀴엠>, <더 레슬러>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작품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난해하고 아름다운 영화였던 <파운테인> 은 우리나라에서는 <천년을 흐르는 사랑>이라는 순정만화적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블랙스완>도 따지고 보면 여성의 순정만화적 감성을 집요하게 헤집어 내어 분석심리학적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다. <파운테인>도 마야종교의 사후 철학을 집요하게 표현하여 동서양의 원형적인 생명수와 영원한 사랑의 개념을 통합시켰었던 작품. 이후 <레슬러>와 <블랙스완>은 유려한 테크닉보다는 거친 핸드헬드를 통해 현실감을 배가 시킨다. 보통사람 그러나 완벽하고자 하는 보통사람이 어떻게 예술을 구현해내는가를 절제된 연출과 뛰어난 음악적 감각으로 스크린에 탐미적으로 표현해냈다.

사실 이 영화에 주목한 것은 나탈리 포트만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보인 나탈리 포트만의 <레옹> 에서보다는 <콜드마운틴>에서의 조연이나 <클로저>에서의 배역, <천일의 스캔들> 등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누구보다 눈에 들어오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나에게 나탈리 포트만은 여배우의 얼굴이 예쁘냐, 몸매가 늘씬하냐 하는 문제를 아랑곳하지 않게 만드는 존재감을 가진 배우였다. 나는 나탈리포트만이 <콜드마운틴>에서 총을 겨누는 과부인 작은 역할을 할 때 도 정말 미친듯이 연기하는 것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래서 <천일의 스캔들>도 보러 간 것이고. 그런 그녀가 맞춤 세트같은 감독과 작품을 만나고 피앙세와 아이까지 만난 영화가 <블랙스완>이니 아카데미를 타지 않아도 배부를 듯.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2008년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에 이어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만에게도 적역을 주는데 좋은감독이란 적재적소에 맞는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 아니겠는가. 그는 과작의 작품을 하는데 매번 장인 정신을 느끼게 하고 다음 그의 작품을 기대 하게 만든다. 그는 전작인 <파운테인>에서 영원한 사랑과 불멸을 표현하더니 여주인공과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헐리우드의 얼마 안되는 지적인 감독일 것이다.

<블랙스완>은 탐미적인 미의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토마스 만 원작의 빈치콘티니의 < 베니스의 죽음> 이라는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이제는 예술적 기력이 쇠해가는 노작가는 전염병이 창궐한 베니스에서 미의 정수라 할 십대소년에게 빠진다. 그 소년을 쫒아다니며 그는 죽어가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다...

이 작품의 주제는 물론 미의 추구이다. 십대소년을 사랑하는 게이적 감성은 탐미적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의 혼이다. 나는 단편을 읽었을 때부터

그러한 예술혼을 작가가 형상화한 아름다운 문체에 매료되었었다. 그 영화는 게이 감독이자 귀족이던 빈치콘티니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비요르센이라는 소년배우는 완벽한 미소년으로 인구에 회자되었었다. 다 커서는 그 미모가 시들었다고 하지.. 여인의 미모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블랙스완>과 고전명화인 1948년 영국감독 마이클 파웰의 분홍신 (The Red Shoes 1948) 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감독은 그 영화를 참고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탐미적인 예술혼과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삶과의 갈등과 충돌 그리고 파국일 것이다. 배역과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것일 것이다. <블랙스완>은 더 직접적으로 이 부분을 드러냈고 신경증적인 강박관념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분홍신>은 조금 더 로맨틱하고 클래식하다. <분홍신>은 안데르센의 끔찍한 잔혹동화<빨간 구두>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영화였다. 빨간 구두를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고 싶어하는 여자 결국 죽을 때까지 춤을 추었다는 그 동화. 실제로 음울하기 짝이 없는 안데르센의 동화는 모두 이렇게 비극적이다. 사랑한 죄로 물거품이 되고만 인어공주처럼 ....성냥팔이 소녀 처럼 ....서로 사랑하는 연인인 작곡가와 무용가 그리고 예술을 위해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무용단 단장. <분홍신>을 보았을 때는 내가 참 어릴 적 이어서, 춤에 대한 미련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버리고 결국 다리를 잃게 되는 여인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야망보다는 사랑이 중요하다...이 정도 교훈이었던 듯.. 하지만 영화는 굉장히 좋았고 강렬했다. 어떤 컴퓨터 그래픽도 테크닉도 없었지만 고전의 향기가 느껴지는 영화. 결론은 마이클파웰은 거장이다.

<레퀴엠>으로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던 대런 아르노프스키도 어느덧 거장의 대열에 들고 있다. 그의 영화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서 소통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파운테인>은 1년이 넘도록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내게 각인되어있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가장 대런 아르토프스키 답게 표현한 영화....눈이 내리는 날 연인의 모습이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이후 그의 영화는 현실에 뛰어 들었다. 더이상 환상의 세계는 없다는 듯... 환상과 현실은 저 깨진 거울 처럼 다른 것이다. 그리고 둘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만 고립되며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는 <파운테인>을 통해 그런 진실을 깨달은 것일까.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블랙스완>은 ‘성공’을 꿈꾸며 완벽을 추구하는 발레리나들의 피와 땀, 눈물과 광기로 범벅이 된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세계, 잔혹한 예술의 세계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 2010년 9월 1일,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초청되면서 월드 프리미어로 화려하게 상영을 시작한 <블랙 스완>. 이미 이 시점부터 주연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에 대한 절찬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작품성에서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은 <블랙 스완>.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수상 행진은 나탈리 포트만에 대한 압도적인 평가로 이어져 전미 방송 영화 비평가 협회에서의 여우주연상 수상과 보스턴 영화 비평가 협회, 피닉스 영화 비평가 협회, 시카고 영화 비평가 협회, 오스틴 영화 비평가 협회, 오클라호마 영화 비평가 협회, 플로리다 영화 비평가 협회와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의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이어지며, 나탈리 포트만을 아카데미 시상식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전미 박스오피스에서의 경이적인 흥행 기록이다.
지난 2010년 12월 3일, 전미 8개 도시에서 18개 스크린에서 제한 상영의 형태로 시작된 <블랙 스완>은 현재까지 1개 스크린 당 주말 성적이 8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2010년에 개봉된 작품 중에서도 정상을 다투고 있다. 이로써 <블랙 스완>은 특정 관객층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의 폭넓을 지지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월 말까지의 전미 박스오피스 누적 흥행 수입이 9천만 달러를 돌파, 1억 달러의 고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으며, 흥행세 역시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블랙 스완>에 매료된 수많은 관객과 평단 모두는 입을 모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최고의 스릴러 영화. 무섭도록 아름다운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은 이 영화가 주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다.”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 Production Note ]

1. 15년 전부터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머리 속에만 존재하던 <블랙 스완>에 대한 아이디어는 5년의 시간이 흐른 뒤, 각본가 안드레스 하인즈를 만나면서 비로소 초고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의 연극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 여배우와 베일에 가려진 대역 배우 사이의 위험한 경쟁을 다룬 초고에서 실제 발레리나인 여동생의 엄청나게 힘든 훈련 과정을 지켜본 감독의 경험을 응용, 배경이 뉴욕 발레단으로 바뀌면서 완벽한 발레 연기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서로 경쟁하는 무용계의 신예 스타 니나와 릴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아로노프스키는 다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 ‘백조의 호수’의 비화와 결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 과정에서 <더 레슬러>의 각본가 마크 헤이먼이 새롭게 가세,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이중성과 대역과 삶을 장악하는 존재를 향한 두려움에 대한 기둥 줄거리가 탄생했고, 여기에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스릴러 형식의 전개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렇게 해서 ‘백조’와 ‘흑조’, ‘마법’, ‘대역’이라는 ‘백조의 호수’의 핵심 요소는 <블랙 스완>의 최종 각본에서 니나의 정신 세계와 복잡하게 뒤엉킨다. 이 과정에서 니나는 性에 대한 심리가 급변, 순수한 여성에서 위험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완성된 각본을 본 헤이먼은 그러나 <블랙 스완>을 어떤 장르로 봐야 할지 판단하기가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과연 한 여자가 사악한 백조로 변해가는 생물 분야의 공포물에 해당할까? 아니면 극심한 중압감으로 정신 세계에 혼란을 겪는 의욕 넘치는 예술가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로 봐야 할까? 물론 영화를 본 관객들과 평론가들은 <블랙 스완>이 두 분야 모두에 해당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 입을 모은다.


2.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는 새롭게 각색된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일생일대의 주역을 따낸 뒤, 연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안한 환상과 괴상한 사건에 사로잡히는 발레리나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블랙 스완>의 각본이 완성되기도 전에 니나 역에 나탈리 포트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녀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아미달라 여왕 역에서부터 아카데미상 후보와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겨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클로저>에서 스트리퍼 역에 이르기까지 기억에 남는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게다가 포트만은 어렸을 때 발레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현실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니나를 연기하기 위해 필요한 신체적, 정신적으로 강도 높은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돼 있는 배우였다. 아로노프스키는 <블랙 스완>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즉시 타임스스퀘어에서 포트만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영화에 출연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해봤다. 그후로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블랙 스완>의 각본이 완성되었고, 포트만은 각본을 읽고 니나의 심리가 왜곡되고 변해가는 과정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 출연을 확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역을 통해 지금까지의 연기 인생에서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경험을 했고,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봐야 했다.

“니나는 발레에 전념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발레리나로서 분명한 주관도 없이, 자신의 관능미와 해방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돌변하는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한다. 배우로서 그런 면을 표현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니나는 완벽함, 한 순간 그러니까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 존재하는 완벽함을 원한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이 완벽해지려면 스스로를 파괴해야 한다. 그녀가 ‘흑조’가 되려고 노력하자 내면에서 어두운 뭔가가 끓어오른다. 급기야 정체성의 위기가 닥쳐 자신이 누구인지 혼란스러운 것은 물론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 그리고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자신과 닮은 사람, 불가사의한 만남, 고통이 넘쳐나는 어지러운 세상에 갇혀 니나는 혼란을 겪기 시작하는데, 포트만 역시 그 과정을 겪어야 했다. “니나가 주변의 모든 체계에 반항하기 시작하면서 편집증이 나타나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은, 자신이 제정신을 잃고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암흑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각본에서 무용계의 세부적인 사항을 사실적으로 다루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니나의 이야기가 ‘백조의 호수’와 같은 맥락으로 흘러가는 방식이 좋았다. 나는 마법을 풀려고 힘겹게 노력하는 인물로 니나를 해석했다. 자신을 좌지우지하려는 주변 사람에게서 벗어나 한 인간과 예술가로서 본 모습을 낱낱이 꿰뚫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영화에서 그 모든 점을 표현하려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격한 훈련을 거쳤다. 제작이 시작되기 10개월 전부터 매일 다섯 시간씩 강도 높게 훈련했으며, 뉴욕 시립 발레단의 전 무용수인 메리 헬렌 보어스를 비롯한 여러 전문 교사와 트레이너가 그녀를 엄격하게 지도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무용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덕분에 니나의 분열된 정신 상태를 잘 이해하고 그 배역의 비현실적인 내면의 경험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한다.


3. <블랙 스완>에는 기량이 뛰어난 연기파 배우들이 나탈리 포트만의 주변 인물로 등장, 아름다움과 신비와 두려움이 최면 상태처럼 혼합된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 중에서도 나탈리 포트만과 라이벌 관계인 릴리 역의 밀라 쿠니스는 이 영화에서 자유로운 성격의 신입 단원으로 분해 관능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연기 과정은 이전의 어떤 역할보다 혹독했다. 처음에는 발레복을 입고 우아하게 포즈를 취하는 모습만 상상했다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운 훈련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결국 쿠니스는 온 힘을 다해 무용 훈련을 받으면서 동시에 대단히 충동적인 여성과 환영이라는 두 모습의 릴리를 연기해야 했다. 물론, 쿠니스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안전 망을 쳐주지 않았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릴리는 손에 잡히지 않는 인물이다. 릴리를 연기하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대본을 읽고 나서도 이 인물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다. 장면마다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런 감독과 함께 하면 잘될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감독과 작업했다면 그렇게까지 확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릴리가 니나의 내면에서 원하는 인물의 표상이라면, 예술 감독인 토마스 르로이는 니나가 내면을 표현하도록 가차없이 몰아붙이는 인물. 세자르 상을 받은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이 이 역할을 연기한다.

“카셀은 지구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 중 한사람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오직 발레만을 생각, 그 과정에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버리는 희생자들은 신경 쓰지 않는 예술 감독이다. 카셀은 그 역에 제격이었고, 특히 그의 움직임은 워낙 아름답기 때문에 캐스팅했다.” 카셀은 토마스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 발란친에서부터 바리시니코프에 이르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안무가의 삶과 매력적인 성격을 연구했고 영화의 안무가이자 뉴욕 시립 발레단의 유명한 무용수인 벤자민 마일피드를 관찰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위노나 라이더와 바바라 허쉬는 주연배우들을 든든하게 받쳐주며 원숙미를 더해주는데, 발레단의 전설적인 스타 무용수이지만 정상에서 급격하게 추락하는 베스 역을 맡은 위노나 라이더가 연기하는 베스는 니나의 정신 세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녀를 통해 니나는 앞으로 자신의 앞에 펼쳐질 미래를 예감하기 때문이다. 바바라 허쉬가 연기하는 니나의 엄마 에리카는 딸의 보호자인 동시에 딸에 대한 집착이 심한 인물이다. 라이더와 허쉬는 아로노프스키가 배우들과 작업하는 방식에 사로잡혔다.

“당시에 나는 영국에서 다른 영화를 찍고 있어서 이 영화의 리허설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로노프스키는 내게 숙제를 하나 줬는데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그는 나에게 에리카가 되어 니나에게 편지를 두 번 쓰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영화를 찍는 동안에 니나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편지를 쓰기 시작하자 캐릭터가 시작했다. 아로노프스키는 그 편지를 받아다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나탈리 포트만에게 건네줬다고 한다.”


4.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더 레슬러>에서 프로 레슬링계의 삭막한 인간미와 감춰진 일면을 꿰뚫어봤듯이 <블랙 스완>에서 발레계의 땀과 불안감이 팽배한 발레계의 감춰진 뒷모습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마이클 파웰 감독의 <분홍신>에서부터 하버트 로스 감독의 1970년대 히트작 <터닝 포인트>에 이르기까지 발레는 오랫동안 영화에 등장해왔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는 지금까지의 발레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
특히, 영화를 찍을 때 세부 사항에 아주 집착한다는 아로노프스키는 사실성에 입각해서 영화를 만드는 데에 역점을 뒀다. 그래서 촬영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 영화에 동적인 무대 연기를 담을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영화의 무대 연기가 <더 레슬러>의 대결 장면에 나온 1인칭 시점의 강도를 고스란히 간직하는 동시에 발레의 우아함과 서정성을 포착, ‘백조의 호수’라는 명성에 걸맞기를 바랐다.
그 때문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뉴욕 시립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인 안무가이자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새로운 발레의 창시자인 벤자민 마일피드를 팀장으로 하는 발레팀을 고용한 것이다. 벤자민은 영화에 들어가는 발레 장면의 안무를 맡았을 뿐 아니라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데이비드를 연기했다.
벤자민의 임무는 ‘백조의 호수’에서 주요한 순간을 빼내 아로노프스키가 구상한 신선하고 ‘핵심을 담은’ 토마스 르로이의 연출 및 전문 발레리나가 아닌 두 여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완벽하게 통합하는 것이었다.
“아로노프스키는 원작 ‘백조의 호수’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들을 단 6개월 만에 수석 발레리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나탈리 포트만과 밀라 쿠니스가 진짜 발레리나처럼 보일 특정한 동작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참여하기 전부터 포트만은 발레 강습을 받고 있었고, 어렸을 때 발레를 했었다. 그러나 쿠니스는 발레 강습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 일은 두 사람의 동작을 다듬고 영화에 정확히 필요한 동작이 나오도록 안무를 짜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로노프스키는 훌륭한 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일이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포트만과 쿠니스에게는 녹초가 된다는 말로는 반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갖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두 사람은 촬영 전에 모든 동작을 익히기 위해 촌각을 다투며 연습했고, 그 과정에서 갈비뼈에 금이 가고, 인대가 찢어지고, 어깨뼈가 탈골하는 부상 및 과다한 훈련으로 쌓인 피로와 싸워야 했다. 그러는 사이 두 여배우는 숙련된 지도를 통해서 점차 실력과 자신감이 넘치는 무용수로 발전했다.


5. 거울의 방 : 시각 디자인


<블랙 스완>의 촬영은 뉴욕 시립 발레단의 본거지인 링컨센터 외부에서 시작됐으며 이어서 몇 주 동안 뉴욕과 맨해튼의 촬영장, 그리고 댄스 영화의 고전인 <재즈는 나의 인생>을 촬영한 뉴욕 주립 대학교 공연 예술 센터의 다용도 공연장으로 이동해서 진행됐다.
아로노프스키는 뛰어난 디자인 팀과 협력해서 두 가지 시각 효과를 결합했다. 하나는 소형 카메라를 들고 발레 장면을 거칠게 촬영한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 감각을 모호하게 만드는 굴절 거울과 섬뜩한 도플갱어의 장면으로 가득한 환각적이고 공포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인 이미지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들은 주연 배우와 함께 춤을 추거나 추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디자인 팀에는 늘 아로노프스키와 작업하는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는데, 촬영 감독 매튜 리바티크가 팀장을 맡았고, 미술 디자이너 테레즈 드프레즈(<하울>), 의상 디자이너 에이미 웨스트콧(<더 레슬러>), 필름 편집자 앤드루 웨이스브럼, A.C.E. (<더 레슬러>), 특수효과 감독 댄 슈레커(<레퀴엠>)가 참여했다.
아로노프스키와 리바티크는 100여 년 동안 무용 영화와 심리 스릴러 영화에서 다뤘던 기법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을 활용했다. 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장면은 재설정이나 클로즈업이 없이 끊임없이 선회하며 움직이는 단 한 대의 소형 카메라로 촬영됐다.
“심리 스릴러를 소형 카메라를 들고 찍자니 아주 흥미 진진했다. 다른 스릴러 영화에서 소형 카메라를 들고 괴물의 시각에서 촬영한 장면이 몇 번 나오기는 했지만 이번 영화와 같은 경우는 없었다. 이번처럼 전 장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으면 아주 독특한 느낌이 든다. 또 <더 레슬러>에서 링을 찍었던 것처럼 소형 카메라로 발레 장면을 찍으면 무대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메라가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고 돌게 되는 이런 방식은 에너지와 땀과 예술적 기교를 가까이에서 포착할 수 있다.”
한편, 거울은 이 영화의 시각적 구조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발레계에는 어디를 가나 거울이 있다. 무용수는 항상 자신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거울에 비친 모습과 무용수의 관계는 자신의 본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거울을 아주 좋아한다. 거울은 오래 전부터 영화에 사용됐지만 새로운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우리는 거울을 바라보는 행동이 지니는 의미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거울은 도플갱어에 시달리는 니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6. 음악: 클린트 멘셀
<블랙 스완>의 분위기와 긴장과 감정을 조성하는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아로노프스키의 오랜 동료인 클린트 멘셀이 작곡한 음악이었다. 멘셀은 먼저 니나가 강박 관념을 갖게 된 원인인 ‘백조의 호수’로 바로 접근해서 차이코프스키가 쓴 유명한 고전 발레 음악의 일부 테마를 변형해서 영화 음악으로 만들었다. 아로노프스키가 영화 음악을 의뢰했을 때 마침 멘셀은 런던에서 발레 공연을 본 직후였다. “나는 그 공연에서 생생하고 본능적인 느낌에 큰 영향을 받았던 터라 ‘이번 영화 작업이 재미 있겠군’이라고 생각했다.”
맨셀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차이코프스키의 위대한 음악 유산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니나의 어둡고 현대적인 변화 과정에 맞는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에 당면했다. “차이코프스키의 환상적인 음악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나는 그 점을 가슴 깊이 존중했지만 딱히 정해진 경계가 없다는 사실도 자각했다. 나는 관객이 ‘이 부분은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이고 저 부분은 아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백조의 호수’를 새롭게 해석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맨셀은 영화에서 니나가 백조 여왕의 역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대작이 니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며 기괴하고 격정적인 존재로 변형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음악은 항상 차이코프스키를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차이코프스키를 기반에 두되 새로운 실험을 해봤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아주 복합적이고 대단히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음표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현대 영화 음악은 훨씬 억제되고 단순한 요소로 전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나는 ‘백조의 호수’를 거의 해체해야 했다. 나는 그 발레를 특정한 리듬과 진행과 멜로디로 분해한 다음에 영화 음악으로 다시 재구성했다.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과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무조와 불협화음이 많이 들어갔다.”
또 멘셀은 니나의 잠재의식과 편집증으로 전환되는 과정, 주체할 수 없는 욕망과 두려움을 반영하는 요소를 집어 넣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워낙 강력하고 표현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공포의 요소를 조정하는 작업을 어렵지 않았다. 당시 발레는 오늘날의 영화와 마찬가지여서 그의 음악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조장하게 만들어졌다.” 멘셀은 영화 제작이 들어가기도 전에 음악의 일부분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후 발레 장면을 음악에 맞춰서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후에는 영감을 제공하기 위해서 매일 들어오는 촬영장 사진을 보면서 곡을 썼다. 아로노프스키는 멘셀이 작곡한 음악에 아주 만족했다. “지금까지 들어본 멘셀의 음악 중에서 최고 작품이다. 곳곳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숨결이 느껴지는 동시에 새로운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으스스하면서도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답다.”

7. 분홍신 (The Red Shoes 1948) 영국 감독마이클 파웰, 에메릭 프레스버거 출연모이라 쉐어러 (빅토리아 역), 마리우스 고링 (줄리앙 역), 안톤 월브룩 (레몬토프 역), 레오니드 매씬, 로버트 헬프만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인터뷰: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10년 동안 준비했다고 들었다.

<레옹>(1994) 때부터 나탈리 포트먼의 팬이었다. 알고 보니 나탈리의 매니저가 내 오랜 대학 친구였다. 그래서 줄이 닿았다. 그녀를 뉴욕 타임스퀘어의 커피숍에서 만날 기회를 잡아 <블랙 스완> 초기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그 후 영화의 초반작업을 시작했지만 발레라는 세계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굉장히 꺼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안을 들여다보며 공부하는 데만 엄청난 시간이 걸렸다. 너무 오래 걸려 나탈리가 “발레하기엔 너무 늙어간다”고 푸념할 무렵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본격적으로 제작했다.

-<더 레슬러>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히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사람과 감정이 있고, 서로 그 감정이 통하면 관계가 생긴다. 쉰 살 레슬러든 스무 살 발레리나든, 그들이 하는 일에 진실성이 있고 그걸 관객이 이해할 수 있다면 영화의 약속이 성립된다.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 이야기든 수퍼 히어로 이야기든 진실성이 중요하다.

-뱅상 카셀이 맡은 발레단의 단장이 감독인 당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석해도 되나?

맞다. 나를 닮은 배우를 그 캐릭터에 캐스팅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캐릭터와는 반대로 너무 직설적이다. 아마 나탈리가 나와 처음 같이 작업한 A급 배우일 것이다. 너무 직설적이라서 A급 배우들이 모두 도망가버렸다. 돈이 없어 세트장에서 점심 식사로 초밥 같은 걸 못 주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화 찍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뱅상 카셀이 맡은 토마스는 다르다. 아주 간접적으로 원하는 것을 유도하는 스타일이다.

-1948년 작 <분홍신>을 본 적이 있나?

사실 <분홍신>에 대해선 몰랐다. 아무래도 봐야 할 것 같아 봤는데, 마스터피스였다. 줄거리와 주제, 발레라는 소재가 비슷했다. 하지만 영향을 받진 않았다. 영화가 만들어진 1940년대는 지금처럼 특수효과가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너무 시대를 앞선 영화였다. 그래서 마음 한쪽에 두고 영향받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람들이 그 영화를 많이 기억하는 것 같다.

-나탈리 포트먼은 캐릭터를 실제 생활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 균형을 잘 이루던가?

여러 배우들을 봤는데,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가 켜질 때 배우의 캐릭터도 함께 켜져야 한다는 점이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 에너지가 발산되고, ‘컷’ 하면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배우는 누가 뭐라 해도 가짜로 연기하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자신이 연기할 배역의 감정을 연장해 실생활에서도 느끼는 연기법을 터득한 배우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난 좀 별로라는 거다.

-핸드헬드 촬영이 인상적이다.

<더 레슬러>에서 사용한 걸 그대로 적용한 거다. 이런 스릴러 영화에 사용하는 게 맞는지 모르기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했다. 나탈리가 위험한 순간에 카메라를 돌아보며 “살려줘!” 하고 말할 듯한 상황처럼 보여 걱정했다. 하지만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최초로 시도했고, 결과에 만족한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 새로운 방법과 각도로 움직일 수 있다. 그 결과 영화 초반에 전례 없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캐릭터를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고,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이번 영화가 발레라는 환상적인 세계에 부정적인 시각을 부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 기사를 보고 굉장히 유감이었다. 내가 접한 많은 발레리나들은 이번 영화가 발레라는 세계를 진지하게 다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발레에는 어둡고 공포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번 영화 제목을 ‘백조의 호수’라고 붙일 수도 있었다. 동화 속의 캐릭터를 모두 영화의 실제 캐릭터로 해석했으니까. 현대판 <백조의 호수> 이야기이며 발레의 어둡고 힘든 역경을 영화로 표현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꼭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다.

-특정 장르에 맞춰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이제는 관객이 더 이상 어떤 장르라고 꼭 집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많이 성숙했다. 영화가 재미있는 한 크게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도 그런 거다. 다르지만 재밌고, 수많은 미디어에 노출된 관객에게 식상하지 않은 경험을 주고 싶었다. 기억에 남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극장을 찾게 하는 영화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