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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의 풍경 Landscape In The Mist(opio Stin Omichli, 198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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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의 풍경 Landscape In The Mist(opio Stin Omichli, 1988)

bakingbook 2010. 9. 15. 22:20

"밤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고, 언제 새로운 날이 밝아올 것인가"

<안개속의 풍경 Landscape In The Mist(opio Stin Omichli, 1988)> 은 그리스의 국민감독이라 할 수 있는 테오 앙겔로플로스 감독의 1988년도 영화였다. 한국에는 1996년도에 동숭아트센터에서 개봉해, 당시 포스터와 제목에 반해서 달려가서 봤었다.

테오 앙겔로플로스감독은 <영원과 하루 Eternity and a day >, <비키퍼 The BeeKeeper>와 함께 그만의 신화적 서술방식 (Mythic Method)을 통해 조국 그리스의 역사 위로 오늘날 당면한 허기와 고독을 영상화한 것으로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는 것 같은 현실세계 경험의 파편들에 질서와 형식, 의미를 부여" 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불필요하다고 여겨져서 생략되는 시간을 감독은 사멸된 시간 (Dead time)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사멸된 시간'이야말로 관객의 몫이며 그 장면을 집요하게 응시함으로써 그 안에 내재된 것을을 찾을 시간을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화면은 르네 마그리트의 몽환적인 그림같아 빠져들게 되지만 내용은 잔혹하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롱테이크와 익스트림 롱숏이 많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카메라 스타일은 어린 남매의 눈이 아닌 주변의 눈으로 남매를 바라보게 한다. 관객의 감정이입이 막힌채로 무심히 펼쳐지는 남매의 여행은 그런 이유로 인해 더욱 잔혹하다.감독은 값싼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 굳이 남매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관객이 있다면 온전히 그의 몫일 뿐이다.

친구는 내게 이 영화에서 볼라가 알렉산더의 손을 꽉 잡으며 길을 뛰어갈 때마다 몇번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나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안개 속의 풍경>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찾아나선 어린 남매, 11살의 블라와 5살의 알렉산더의 여행담이다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인셈. 두 남매의 여행길은 곳곳에 황폐한 황무지와 안개가 놓여있다. 영화의 오프닝은 알렉산더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태초에 어둠이 있었어. 태초에는 어둠만이 있었는데,그 후에 빛이 만들어졌지."

창세기에 나오는 이 말은 이 영화의 전반을 차지하는 의미심장한 것으로 영화의 앤딩까지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블라와 알렉산더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아빠를 찾아서 떠나기로 하고 독일행 기차역으로 나가지만 막상 기차를 타지는 못한다.

"너희들 또 왔구나. 도데체 매일 밤 왜 오는 거니?"
기차역에 있던 아저씨의 말을 흘리며 몇 번이고 돌아왔을 그 길을 다시 찾아 들어가 마침내 남매는 무임승라를 한다. 기차 한켠에 쪼그리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벅차보였지만 그들의 앞에 놓은 여정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차 있다. 그들은 '아빠'를 찾아 나섰지만. 그들에게 '아빠'는 희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방과 후 집에 갈 때면 뒤에서 아빠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지요. 그럴 땐 너무 외로워요. 답장을 해 주실 땐 기차 소리도 담아주세요."
누나 블라가 보내는 편지에는 수신인이 없다. 이들이 삼촌을 만났을 때 삼촌은 아빠가 독일에 있다고 한 것은 엄마가 꾸며낸 것이며, 엄마조차 아빠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 두 남매의 표정과 생각을 볼 수 없지만 그들은 여행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희망이란 인간과 신에만 속한 일이다."
알렉산더가 죽은 말을 보며 소리내어 울고 있을 때 볼라는 동생에게 '죽어가고 있어', '죽었어'라고 말하며 알렉산더 스스로 그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이게끔 내버려 둔다. 어린 동생에게 이것은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겠지만 볼라는 그들의 긴 여정이 이보다 더 힘들것임을 어린 동생도 깨닫길 바란다. 알렉산더는 누나로 인해서 그렇게 말없이 성장한다. 어렵게 국경을 넘어 안개속에 갇힌 독일 땅에 들어섰을 때 두려워하는 누나에게 두려움을 잊게 이야기를 건네는 알렉산더의 여유는 아마도 그런 경험으로 인해 가능했을 것이다. 저렇게 어린 소년이 그 과정을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고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서 키워지지 않아도 세상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게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볼라와 알렉산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여린 손을 잡고 앞으로 뛰어나갈 때마다 나 역시 마음이 동할 수 밖에 없었다.

바다에서 크레인으로 끌어올려지는 잘린 손은 엄지손가락이 잘려있다.

'끝이 잘린 손가락에 좌절하며 현대인의 슬픔과 비애를 느끼지만 오래동안 그 장면을 따라가다보니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허둥 지둥 살아온 일상을 거쳐 푸른 바다위를 공허하게 서있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우리의 출발과 고단한 노정은 매사 그렇듯 허상이며 보상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래도 떠나야한다.


영화는 황무지처럼 서늘한 그리스를 배경으로 희망을 잃은 절망적인 현실을 안타까워 한다. 남매가 처음 만난 청년이 속한 유랑극단은 늙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여기 저기를 돌며 연극을 공연하지만 시대가 변한만큼 그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다. 군입대를 앞둔 청년은 그렇게 잊혀지는 것들에 대해서 두려워 한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 것의 실체도 알지 못한 채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식날 울며 도망가는 신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거절을 당하고 분한 김에 트럭 운전사가 11살짜리 알렉산더를 트럭뒤로 데리고 가 강간하는 장면의 미동도 않는 트럭, 블라의 첫사랑인 오레스테스가 자신이 동성연애자라고 말하는 순간 이 모든 장면에 대해 카메라는 아무런 의견도 느낌도 표명하지 않는다. 다만 미동도 않고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뿐. 가벼운 일상의 소리들과 뒤섞여 이 침묵의 시간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관객은 사멸된 시간들의 파편을 긁어 모아 조립해보고 사건을 본다.

"외로운 작은 소녀야 첫사랑이란 다 그런거란다. 심장은 부숴질 것처럼 두근거리고 첫사랑이란 다 그런거란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절망하는 블라에게 오레스테스가 하는 말은 감독이 해줄수 있는 위로였을까.

하지만 블라는 다시 돌아서서 동생의 손을 잡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어떤 난관과 고통도 이들의 여정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아직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는 한.

가방을 메고 안개 자욱한 도로 위를 걸어가는 남매의 모습은 절망은 늘 희망에로 들어가는 문임을 상기시킨다.

오레스테스는 남매에게 네거티브 필름 조각을 보여주며 묻는다.

"안보이니? 저기 안개 속에 멀리 있는 나무가 보이지 않아?"

남매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오레스테스는

"사실은 나도 안 보여. 농담한 거야."

라고 말하지만 알렉산더는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고 말한다. 알렉산더는 이 텅빈 필름 조각을 유심히 꺼내보곤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여지는 것으로 영화는 완성된다.

남매에게 필름 속 안개는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이고 현실이다. 그 속에 있다고 말하는 나무는 아마도 알렉산더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꿈 속에서만 잡힐 듯 나타나는 아빠의 존재와 같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가끔 햇살 속으로 그 필름을 바라보며 그 속에 있을, 햇살 너머 그들의 종착지에 있을 아버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 누구는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도태되고 잊혀지지만 남매의 마음 속에서 결코, 그것이 만날 수 없는 존재라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일까.

인간은 언제고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여분의 시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텅빈 필름이 영화의 마지막을 예고하듯 우리삶의 여분이 우리를 증거하게 될 것이다

볼라와 알렉산더는 그들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던 큰 나무 앞에서 멈추어섰다. 멈추어서서 바라본 풍경은 실제 그들이 꿈꾸었던 풍경이기에 더욱더 아름답다. 그곳에 만나기를 바랐던 아빠가 존재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 사랑하는 아빠 우린 너무 오래도록 기다렸어요. 우리 낙엽처럼 여행을 하고 있어요. 정말 이상한 세상이에요. 여행가방들, 얼어붙은 기차역 ,이해못할 말과 몸짓들 그리고 으스스한 밤 그러나 우린 행복해요. 우린 여행하고 있으니까요." -알렉산더의 대사중

"385 드라크만 주시겠어요?"

블라가 간이역에서 낯선 군인에게 다가가 한 말이다. 이제 독일은 머지 않았고 블라와 알렉산더는 마지막 기차여행을 남겨놓았다. 블라는 이제 세상의 때가 묻은 것일까. 처음엔 의아하던 군인은 점차 어떤 눈치를 채고 안절부절 한다. 그순간에도 블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름이 뭐니?"

"........ "

"바보 같은 질문을 했구만."

기찻길...트럭의 천막과 군인의 초조한 표정이 엇갈리며, 성인인 관객이라면 좌불안석이 된다.

오랜갈등.... 끝에 군인은 몇 푼의 돈만 놓은채 허겁지겁 사라진다.

그 돈으로 그들은 처음으로 기차의 좌석에 앉는다.

그리고 관객은 안도한다. ^^

기차는 국경지대에 도착했지만 여권이 없는 남매는 쪽배를 타고 국경을 건넌다.

"무섭니"

"아니 , 무섭지 않아"

국경수비대의 총소리가 들리고 안개 속에서 두아이가 떠오른다.

"나, 무서워?"하는 알렉산더의 목소리와 함께....

****

블라와 알렉산더는 이 강을 건너서 절반의 어른이 된 것일까. 두 남매의 로드 무비이자.성장영화로서

이 영화를 해석한다면.... 그렇다. 두 남매가 찾아나선 희망으로의 여정은 아주 무서웠다. 천진난만한 어린남매가 모르기에 감당한 것이지만, 알았어도 갈 수 밖에 없었던 길이다.

세상을 꿈꾸며 더 넓은 황무지로 가야한다고 해도 남매는 행복할 것이다. 꿈꾸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긴 여정을 걸어왔기 때문에. 자주 멈추어서서 하늘을 보거나 풍경을 보았던 사람들 곁을 떠나 남매는 또 어딘가로 갈 것이다. 그곳이 엄마가 없고 아빠가 없는 곳이라도 남매는 행복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그 긴 여정속에서 아빠를 만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아끼고 볼라에게 첫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해주었던 청년이나 볼라를 겁탈했던 트럭기사, 간이역에서 만난 말없이 차비를 줬던 군인 모두 아빠의 다른 모습들인지도 모르다. 그것을 남매는 아마도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첫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된 볼라. 진실로 두려움의 실체를 없애버리고 믿음이 희망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된 알렉산더처럼 우린 덧없을지도 모르지만 안개속 풍경을 보기 위해서 가끔은 멈추어 서서 바라보아야 한다.

****

「난 아직 믿는다.
어딘가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난 가끔 잊는다.
어딘가에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진중하게 내린 결정은 운명의 소리(그렇게 할 수 밖에!)와 연관되어 있다. 무거움, 필연성, 가치는 서로 긴밀히 연관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있는 것일까. 우리가 우연이라고 가벼얍게 여기는 것이 필연이란 이름으로 묶이게 되면 운명처럼 무겁게 다가오는 것일까. 아니, 운명도 우연처럼 가벼얍게 디뎌버릴 수 있는 것이지.

Allem sage ich nun Tschü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