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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황동혁 20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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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황동혁 2011

bakingbook 2011. 9. 30. 22:01

타협과 순응의 나라


영화 도가니는 광주 우석재단의 장애우 학교에서 2000년부터 5년간 장애학생들에 대해 교장 행정실장 교직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성폭행이 이뤄진 사건에 대한 사건개요와 재판 과정 그리고 에필로그로 이루어져있다.

영화의 내용은 이미 대중의 폭발적이 관심이 분노로 인해 화제가 되고 있어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신문기사를 통해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영화가 일정한 수준의 연출과 표현력을 담보했다는 정보를 알고나서야 보았다.
나는 영화보다 쇼킹한 현실을 그리는 선정적인 영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이미 그런 선정성은 보았다. 선정성이 흥행을 담보하기에는 그 사건의 무거움과 죄책감, 책임감이 너무 컸기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있는중 재판 결과가 나온 후의 재판정의 아수라장은 침묵의 슬로모션으로 표현되었다. 정적 속 상영관에서 들리던 훌쩍거리다 급기야 엉엉 흐느끼는 울음소리는 관객석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영화 속 청각장애 혹은 정신지체 아동들의 진술에서 나오는 성폭행의 장면들은 의외로 억눌러져 있고 표현은 자제되어있었으며, 사건에 관련된 관계자의 수와 사건의 흉포성과 잔악함은 정말로 많이 많이 축소되어있었다. 동시대의 장소같지 않은 그 은폐된 공간에서 아동들은 어쩌다 잘 태어나 지역유지로 교회장로거나 교사라는 탈을 쓴 사이코들을 위한 환락의 제단에 희생양이었을 뿐이었다. 그 공간에 어디에도 인간은 없었다. 사람들은 어찌 어른으로써 인간으로써 그런짓을 하냐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렇다고도 한다. 하지만 드러난 사건으로 봐도 그들은 인간도 짐승도 아닌 그 무엇이다. 그 무엇에겐 취약한 아동들은 동하면 성적분출구로서 그들의 비틀린 욕망을 풀어주는 성도구였을뿐이고 그들의 죄를 덮어주는 경찰은 그들을 비호해주고 그들의 변태적 조직을 유지해줄수 있는 방탄조끼 법원은 그들의 드러난 죄악을 감출수 있은 투명망토, 교회는 그들의 악행을 주님의 뜻이라며 합리화하여 천국으로의 면죄부를 주는 허상. 악행을 쌓아나가는 동안 일용한 양식인 눈먼 정부 보조금은 계속 들어오고 그것을 주선한 지역사회는 서로 이익을 나누며 윈윈한다. 그리고 그 돈을 교회에 헌금하며 한순간 양심의 빚을 갚는 것처럼 여겼나보다. 어떻게 폐쇄되고 은페된 지역사회 무소불위의 권력을 위임받은 지방 토호들의 악행이 저질러지고 연대하며 수년을 지탱해가고 위기를 빠져나가 더 공고히 결속하는지 이 사건은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감독의 감정과잉이 없이 선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쳐들어가는 직선적인 표현이 좋았다. 영화가 장애아동 성폭행에 울분을 토하기보다 지방 소도시에서 자행되는 인습적 악행과, 권력을 장악한 지방토호와 지방기관사이에 사슬처럼 이어지던 유착관계를 냉정하게 짚어내서 더 좋았다. 실제 악은 더 거대한 무엇이었고 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의 집단이 오래동안 만들어온 관습이란 시스템이었다. 감독은 실제는 '영화의 8배'였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여러가지 잔인한 영화와 현실에 단련된 나란 사람이 보기에 영화 속의 표현은 아동의 심리적 상처를 걱정할 정도의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행정관할을 핑계로 시청과 교육청의 떠넘기기식 행정으로 서민을 지치게 하고 경찰과 검찰 재판에 이르기까지 법을 너무도 잘알고 그쪽에 줄을 댈수 있는 권력층사이에 주고 받는 혈연 지연 학연의 헝클어진 실타래들이 결국은 그 죄를 덮어주고 그 죄인을 옹호하여 사회속에서 여전히 강하고 편하게 살아가는 여지를 주는 부분은 그 영화를 보는 관객의 트라우마를 걱정할 정도였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 영화로 인해 슬픔을 넘어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분노를 경험해서 며칠간 생활이 안될 정도였다고 한다.
왜 재판과정과 결과가 트라우마가 되는가. 그것은 이미 어느정도 사회생활을 한 성인들이 볼 때 너무나 익숙한 어디선가 당해보거나 본적이 있는 그래서 그때마다 살인충동을 일으킬만큼 이성을 잃어본적이 있던 일들 중 하나였으니까.....................................

사람이 지금 가졌다고 늘 가질수 있을까. 아니다. 그럼 지금 가지지못했는데 가질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 모든것은 기회의 가능성의 저변이 넓혀지는 쪽으로 발전한게 아니라 점점 기회가 좁아지며 박탈당하고 혈연 지연 학연으로 나눠먹는 소수가 연대하여 잇권을 독점하는 독과점으로 변해왔다.
자유민주주의와 복지사회의 열망을 향하고 애플의 아이패드의 정보와 기술의 눈부신 우주과학시대에 작은 지구 그속에서도 쪼그만 땅덩어리 남한에서도 더 쬐그만 광주 소도시의 학원재단, 교회, 교사, 경찰, 행정청 교육청,법원에 이르기까지 결탁되어 있는 타협과 옹호의 카르텔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이러한 문제들을 드러낸다. 이문열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통해 조그만 학급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알레고리를 보여주었듯 영화는 이렇게 많은 문제들 특히 아동동성폭행 특히 장애아동처럼 자신이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더우기 부모나 사회조차 보호할 힘도 의지도 없는 사회최약자들의 사건에서조차 이 결탁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며 나아가 썩은 부분을 봉합, 비틀린 사회체계를 유지해가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면 내 개인적인 경험들이 생각난다. 학교때 연극공연에 참여했다가 그때 같은 지방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그 연극에서 잇권을 나누며 동조하지않는 외부사람들을 배척한던 장면, 박사과정 때도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아낸 교수들이 자신들에게 아부하는 이들과 공범의식을 가지며 뛰어난 사람들을 배제한채 나눠가지던 장면들. 누가 뛰어난 사람에게는 보상이 주어진다고 했던가. 조그만 공간안에서도 제일 서열이 높은 사람의 횡포를 참고 그 우둔함을 칭찬할수 있으면 떡고물이 돌아온다. 그런식이니 재능있고 뛰어난 사람은 도태되고 나쁜일도 같이 해야 좋은 것을 나눠가지는 관습이 생긴다. 이것이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돌아가야할 사회시스템을 우둔한 사람들이 좌지우지 하며 공멸하는 길로 가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나라 조선사회가 그랬다.

이영화를 보며 공분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이미 깊이 병든것이다.
이영화를 영화계가 가진 안개 속에서 만들어내었던 의지력이 있었고 매스컴이 한줄기사가 아닌 전면에 기사를 실어주고 관객이 본인의 고달픔을 잠시 접은 채 타인의 고통을 보기위해 영화관을 찾는다는 것만해도 사회는 자신속에 곪아가는 상처를 직시할 용기가 있음을 보여준다.


공유는 강인호라는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며 사회적인습과 싸움에 보통사람들이 겪는 좌절과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인호는 ' 아이들이 그런일 당했을때 난 아무것도 못햇어' 라는 관객 모두가 느끼는 죄책감을 대변하고 공유한다.공유가 고뇌하는 정적인 인간이라면 인권간사로 선악이 분명한 동적인 역할의 서유진(정유미분) 은 ' 겨울이 추운 것은 소중한 사람의 온기를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며 사건의 연대 책임을 분명히 하고 심판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신념하나로 자신에게 조그만 이득도 안들어오는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인물인 것이다. 악행은 전염되지만 행복도 전염된다. 달걀로 바위를 깰수도 있다는 신념을 보통사람들은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인호는 병을 앓고 있는 딸아이와 노모에 대한 생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런 이유로 자신의 손을 잡은 갸날픈 아이의 손을 지금 놓을수 없다. 그래서 이 사건을 세상에 말하기로 결심한다.

은폐되어있던 도가니를 개봉하는 순간 그안에서 소용돌이 치던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사실 이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이썩은 냄새를 맡고 있었으며 이미 익숙한 상태이기도 했다.
실제로 인화학교사건에서 대부분의 교사가 아이들을 성폭행하는 데 가담하거나 알고도 눈을 감았다고 한다.규모가 작은 지방소도시는 서로 혈연 지연 학연으로 맺어져 토호세력의 힘이 결집되어 있어 은폐가 가능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외부인인 인호에 의해서 사건이 드러나는 것도 이러한 점과 관련된 것 같다.

MT를 가서도 교사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을 성폭행하거나 화장실에서 윤간을 하거나 벌대신 키스를 하거나 아이들이 보는 데서 버젓이 성폭행하는 것이 일상처럼 반복되었는데도 오랜시간 은폐되어 있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가담이나 방조가 있었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그들은 같이 범죄를 저지르면서 '남이 아닌' 동지 의식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이코패스가 학원재단의 장이 되고 학원에서 할렘을 만드는 방식이 되어도 지역사회는 눈을 감은 것이다. 그래서 제목은 '광란의 도가니'. 그 도가니 속에 들어가면 도취되어 이성을 잃고 같이 발가벗고 수치심이 사라진채 같은 짓을 하며 동일감과 희열을 느끼고 세상은 자기들만 있는 것 같은 환상속에 살것이다. 어쩜 그 일을 주도한 교장이나 동생인 행정실장은 그러한 권력의 희열을 느껴 그런 변태적 행각을 조직적으로 한 것이 아닐까. 내가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성폭행을 하거나 살인하는 것들은 희생자를 자기 맘대로 요리하는것에 대한 희열때문에 그런 범죄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상은 암리 애써도 안되는 것 아닐까.
영화는 말한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라고 .


이 영화는 실화로 2005년 김대중 정권시절 광주 우석재단의 인화학원에서 일어난 상습성폭행이었고, 노무현정권 당시 한창 촛불시위로 정국이 뒤숭숭한 가운데 신문귀퉁이에 한줄 기사로 난 재판결과로 지상에 떠올랐다.
그때 기사는 희미하지만 장애학교 성폭행 사건에 대한 판결 내용이 전부였던것 같다.
하지만 작가 공지영이 본 기사내용에는 그 재판에 대한 기사가 조그맣지만 기자의 감정과 함께 재판과정의 초상이 겻들여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인턴기자가 쓴 신문기사 한 줄이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최종심 판결이 내리자 마자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자들이 내는 소리없는 울부짖음이 재판정을 가득채웠다는 내용은 왜 내가 읽은 기사에는 없었을까.....객관적이고 차가워야할 기자의 감정이 개입된 이기사가 이 사건을 소설화하여 세상에 드러내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 사건은 더 큰 사건(?)이라고 생각되어 연일 신문지상을 가득채우던 촛불시위기사에 가려 어디서나 일어나는 흔한 일쯤으로 치부되어 사회전체의 무관심속에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후 촉발된 사학법개정은 사학집단과 권력층사이의 결탁과 이권문제로 무산되어버렸다. 그 사학법을 기어이 반대했던 것이 지금의 정권임을 생각할때 이 사건은 그야말로 구정권과 현정권의 결탁이 이뤄낸 문제였다.

결국 사건과 2005년 재판 당시의 향토적 인습에 얽매인 구정권의 지방토호 비호와 사학법을 통과시키면 잃은것이 많았던 신정권과의 결탁으로 인해 사건의 원인은 제거되지 못한 채 상처도 봉합되지 못하고 꼴 사나운 모습으로 이웃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2011년 ,만들어진 <도가니>는 원작을 본 배우의 공분과 그의 의지에 동조한 제작진이 끝도 보이지 않는 안개같은 영화현실 속에서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영화속에 드러나는 익히 익숙한 혈연, 지연, 학연 끼리의 징그러울정도의 밀착과 결탁은 영화계라고 다르지도 않다. 사실 영화에서 보이는 전관예우, 사립학교 교사가 지불하는 학교 발전기금, 같은 학연이나 지연끼리 요직이나 이권을 나눠가지는 행위 등은 보호가 필요한 장애아동을 위한 시설뿐 아니라 대학이나 회사등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 광범위한 대한민국의 병폐이기도 하다.

광주 지역사회와 교회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지방토호세력인 우석재단의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이 무식하고 야만적임에도 불구, 그세력에 결탁 아부한 머리 좋은 사람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은폐되었고 인권의 도시라는 정서상 사건과 관련없는 그 지역사람들도 '부끄러운 자화상'인 이 사건이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재판이후에도 이루어지지않은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요구를 위해 천막 농성을 하던 이들 모두 이러한 지역사회의 돌팔매와 외면으로 인해 지쳐가며 절망하던 2011년 영화화되어 대중적 관심을 끌게 되었다는 것은 이 범죄의 시효가 아직 지나지 않았음을 하늘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지방 토호세력을 옹호하던 교회집단이 사회의 최약자를 '악마'라 지칭하며 돌파매질하는 모습은 위선의 정점으로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사랑의 종교 '기독교'까지 이 도가니 속에서는 쬐그만 그렇지만 그 지역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위해 손쉽게 이용된다.

일찌기 예수님은 말씀하셨지 않은가. '이중에 가장 보잘 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를 위한 것이다.'

영화에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연상시키는 '안개'로 유명한 무진이라는 가상의 소도시를 창조한 것은 이러한 병폐가 안개 속에 가려져서 지금도 어딘가 존재할 인화학교와 지역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일 것이다. 주변의 안개를 무심코 지나가거나 두려움에 들어가지 못하고 목격해도 못볼것을 보았다는 듯 우리는 비실비실 회피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들을 수도 볼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으로 볼수 있다 -핼렌켈러'

p.s: 1.마음 아프지만 슬프지는 않았던 나를 눈물흘리게 헀던 장면은 재판에서 청각장애아인 아동이 '가시나무새' 음악을 듣는 장면이었다. 아주 희미하게나마 들리는 그 아이를 변호사와 학교장은 청각장애아가 무슨 음악을 듣느냐며 거짓말쟁이로 몬다. 하지만 교실에서 울려나오던 희미한 음악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아이 시점의 카메라와 재판정에서 카세트테입에서 들리는 음악을 듣는 아이를 중심으로 전지적 시점으로 위아래로 움직이던 카메라틸트와 360도 회전하던 카메라 트래킹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장애아라는 다같이 취급해버리는 이아이에게 돌보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일반인과도 다름없이 평범한 사회생활을 할수 있는데 사회가 무관심 속에 이 아이들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 물대포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노태우의 6.29선언때 생전 데모에 가담해본적도 없던 나는 높은 굽의 구두에 스타킹까지 신고 데모대열에 동참했다가 생전처음 최류탄을 맞아 봤다. 그 이후 이스라엘에서 물대포라는 것이 시위현장에 등장했다고 한다.
최류탄은 인체에 해롭겠지...왠지 내가 걱정되는걸.

이 장면은 재판이 끝났어도 현재진행중인 선과 악의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깟 무지와 나약함의 악에 질수야 없지.
3. 악역을 한 배우들이 참 힘든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명의식이 없다면 할수 없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아역 연기는 정말 놀라웠다. 어디까지 의식하고 한 연기일지 알수 없으나, 비참한 일을 당하는 약자의 고통과 절망을 더할나위 없이 잘 표현해서 이 영화가 힘을 가졌다.
4. 이영화는 악마의 학교에서 악랄하게 당하는것 보다 사건 이후 사법과정에서 더 분노한다. 재판과 관련된 변호사, 검사 , 판사가 모두 그때 상황을 빌미로 변명하는가 보다. 오늘은 대법원까지 사법체계를 매도하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가 재판과정에 약간의 픽션을 가미했다치고 소도시의 행정과 사법체계였다쳐도 ,재판 결과만 보더라도 그보다 높은 상위 권력의 묵인 없이는 일어날수 없는 결과였다고 본다. 실제 그사건을 고발한 양심적인 교사는 징계되고 죄를 지은 교사들은 복직되었는데 그것은 판결후에도 인화학교가 여전히 재단의 딸과 사위가 맡고 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징계된 교사는 청와대에까지 탄원서를 올렸으나 소용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피해를 입는 이들에 대해 사회가 어떠한 보상도 치료도 없고 가해자의 사과도 없다니, 명명백백한 악에 대해 그당시 청와대나 재판에 관여했던 모두 과연 공범이 아니었음을 주장할수 있을까. 이 사건은 그 사회의 묵인 없이는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이니 알고도 방관하거나 심판하지 아니한 자는 모두 공범자다.
5. 인화학교를 폐기하려한다고 한다. 사학재단이 복지기관을 사유지라 생각한다면 그 재단을 없애고 인화학교는 기념관을 만들어야한다. 도가니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경고하는 기념관 말이다.
6. 교회권력의 위선을 보여준 점 좋았다.
7. 냄새나는 도가니를 다시 덮어버리다니, 우리는 과연 도가니를 깨부술수 있을까.
8. 그나저나 인화나 자애나 참 좋은 말이구만.....사실 더 정직하게 이름을 지으면 '위선'이구만.

9. 야권은 정치적 공세에 이 사건을 이용한다고 한다. 제정신인가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재판결과가 나온 시점이 다 야권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였고 그들의 표밭인 전라도 광주다. 사학법을 목숨걸고 막은 지금 정권도 똑같이 미치기는 했지만...<도가니>에서 고발한 인간존엄의 문제를 정치적공세로 푼다면 해결은 절대 안될 것이다. 개망나니 같은 것들 아직도 정신못차리고 정치싸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