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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피에타

bakingbook 2012. 9. 11. 02:10

 

저번에 울집근처 cgv가 예술영화는 개봉을 안하고. 흥행만 치중한다고 불평한 적이 있었다. 

어제 김기덕 감독의 18 번째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탔다.  <피에타>가 상을 타게 되어서 내게 유일하게 좋은 점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영화관에서 <피에타>를 상영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난 국제영화상을 탔다고 해도  영화들을 예전처럼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보고 싶었던 우디알렌의 영화와 <캐빈에 대해서>와 < 시스터>와 <대학살의 신>도 멀어서 보지 않았다. 영화가 꽃이 아닌데 내게  사소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나는  문화생활에 아낌없이 투자해야한다는 생각이 있는고로 일주일에 한번은 영화를 보고 등산을 하거나 휴양림을 간다. 숨쉬듯 자연스럽게....나는 영화를 본다. 그런데 영화 보러 멀리는 안간다 .. 산책하며 걸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 탄천을 따라 마침 가을바람을 맞으며 물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 기분은 무슨 행사가 아닌 평범한 일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영화보기를.....그렇게 사소한 행위로 보게 된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와 <공모자들> . 특별히 보고 싶었던 영화들이 아니지만 습관처럼 보고 난 후 감상도 그저그런.....영화. 그래도 항상 기록은 하려 애쓰는데 안쓴 한국영화들이 몇개 있다.  저번 주 <공모자들>도 보고와서 리뷰를 작성하지 않았는데  과연 가치가 있을까  이 영화가.....라는 질문이 본 직후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영화가 폭력을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아니 절대로 이야기 해야하지만 영화가 또 다른 폭력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모자들>은 무거운 소재를 감독이 정말 가볍게 만들어 버린 영화였다. 영화를 만드는 이의 책임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된다. 영화가 작품일진데 적나라하게 까발려 보여주는 것 뿐인 것이 작품일 수 있을까. 심지어 시나리오의 기본적인 투르기조차 지키지 않았다. 왜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이야기에서 '카타르시스'를 중시했는지 감독은 모르고 있었다. <악마를 보았다> 처럼 홍수처럼 쏟아지는 사건 사고들의 자극속에서 무감각해진 인간이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며 발악하는 본능에서 나오는 영화.... 그런 영화가 내가 탄천을 거닐며 매번 집중호우로 잠기는 열악한 환경에서 꽃을 피우는 들꽃, 하늘거리는 강아지풀 보다 더 가치가 있을 수 있나...  차라리 씩씩하게 아기오리들을 거느리고 헤엄을 치는 오리들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피에타> 이야기를 하다가 내 영화 감상 일상이나 주절대고 말았다.

나는 김기덕에 대해서 욕을 있는 대로 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김기덕 초기의 영화들은  생 날것의 영화들 <피에타>에 나오던 생닭의 내장들, 엄마라 짐작대는 그림에 꽂아대던 서슬퍼런 칼날 같은 비린대 나는 영화들이었다.  형식도 어쨋거나 내용의 카테고리안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의 영화적 스타일이나 스토리나 충무로의 어느 감독과 같지 않았다. 새로웠으나 싫었다. 앞에 말했던 것처럼 영화작품은 인간 주위의 모든 폭력에 민감해야하지만 영화자체가 폭력으로 존재하면 안된다. 그것은 감독의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감독의 사적인 인생은 모르나, 그 무게조차 가늠할 수 없으나, 만인에게 작품이라고 내놓는 이상 영화는 생닭은 관객에게 내어주어서는 안된다.<음식남녀> 처럼 맛있고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을 만찬이 아니더라도<조제 호랑이>에서 내놓던 소박한 달걀말이라도 정성스럽게 내놓길 바랐다.적어도 나는....

거친 들판에서 새초롬하게 피어나는 들꽃 처럼 영화가 그렇게를 바랐다.

하지만 감독은 폭력과 분노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나는 그의 영화를 많이 기억한다.

많이 본 모양이다. 어쨋거나< 사마리아>와 <빈집>에서 부터는 나는 그를 더이상 욕하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다>의 각본에서도 보듯이 그는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연출력을 가진 이야기꾼이다.

 

그것은 자본의 열악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생존본능을 가진 이야기의 씨줄 날줄이다. 이야기나 대사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첩하는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엔딩을 보면 감독은 이것을 이야기 하고자 도입부에서부터 준비를 하였다고 느껴진다.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그래서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피에타>를 보고 난후 느낀 점은 김기덕이 어쩌면 자기 자신과 화해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영화의 앞부분은 폭력과 미움, 분노 복수 등 초기작을 연상케하지만, 그 표현은 은유적이었다. 그리고 엔딩에 이르르면 감독은  연민과 회개 구원을 이야기한다. 이 부분이 기독교적 원죄 의식이 강한 서구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많이 지었던가) 서구의 지식인들은 죄와 대속에 대한 개념이 뿌리 박혀있다. 어제 그제 우리나라 뉴스에는 온갖 추악한 범죄들이 연일 오르내린다.

성범죄는 왜 그다지도 많은지, 자신보다 약한 자에 행하는 폭력은 자신보다 강한 자에 의해 받은 폭력의 흔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깨닺지 못하는 그들을 용서해야하나. 답은 아니다...

<피에타>의 엔딩은 나에게 영화 < 더 리더>를 생각나게 했다. 김기덕 최고의 영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한국영화에서 드물게 있는 주제 의식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어쩌면 김기덕 최고의 영화는 앞으로 나오게 될지도 모르지.

 

덧:

1. 청계천 그리고 공업사 옛거리의 모습이 황량하게 잘 표현되었다. 심지어 강도의 조그만 집조차 멋스럽다.

2. 조민수의 연기가 아주 좋았다. 남자배우가 처음에 국어책을 읽을때 실소하기는 했지만 이야기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3. 엔딩 장면을 보면서 감독이 확실히 뻔하지는 않다고 느꼈다.

4. 그래 자본주의의 폐해, 그렇게 많은 관을 가진 복합상영관에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못보다니, 이게 과연 옳은 일은 아니잖아.

5 대형마트도 그래. 원래 미국에서 들여온 이런 대형마트를 우리나라 대기업은 중소마트를 고사시키는데 활용했지. 미국은 대형마트는 주택과 떨어진 외진데에만 모아놓게 규제해놓았데 그래서 동네 마트들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하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구멍가게까지 죽인다면 결국 공멸하고 말거야. 겉만 번드르하지,불법추심을 일삼는 강도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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