逍遙
용재오닐과 쏘넷앙상블 연주를 보고 본문
오랫만의 클래식 나들이 -용재오닐과 쏘넷앙상블 연주를 보고-
10월 19일(토) 오후 8시 SF콘서버토리 콘서트홀에서 용재 오닐과 쏘넷앙상블의 연주회가 열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소 늦은 시간 콘서트는 평소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지만 이대 동문음악회 후 우리 자리에 찾아온 아람씨의 광고를 듣고 누군가의 즉석 카풀 제안에 마음이 동하다가, 음악회직전에는 행동력 대장 곽선배의 리드로 연주회를 가기위한 카풀팀까지 결성되었다.
정작 콘서트 홀에 갔지만 주차도 큰 문제, 누군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연주회를 할 때 생기는 주차 문제로 불평하면서 주차장을 찾아 헤메이는 남편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하였다. 남편들이 주차장을 찾아 밖에서 헤메이든 말든 우리가 도착한 콘서트 홀은 기분좋은 북적거림에서 설레임이 느껴졌다. 요즘 일할 때 라디오 클래식 채널 90.3을 듣는 것이 나의 유일한 relaxation이라는 것외에는 나는 클래식 문외한 아니던가. '책벌레'로서의 학창시절부터 나는 오로지 책만 집중했었다. 대학에서는 영화에 빠져서 영화로 박사공부를 하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보는 것에 집중되었는데 나이가 드니 듣는 것에 마음이 점점 기운다. 나의 마음에 영원히 찾아올 것 같지 않던 평화가 오는 시간인 것일까.
샌프란시스코로 온지 어언 6-7년이 되었다. 생각도 안하던 비즈니스를 하느라 아둥바둥하다보니, 문화할동 뿐아니라 사회적 친교나 활동과는 담을 쌓아왔었다. 그러다 작년 말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과 동종업계 외국인이 우리 비즈니스를 탐내며 공격적인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등 비즈니스에서 큰 위기가 왔었다. 나는 결코 절망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화가 나있었고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라는 미 해병대의 모토를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처럼 공격적이 되려던 그때 어두운 터널 끝에서 보이던 그 빛을 따라가다보니 위기는 사라졌다.
많은 생각의 변화가 왔다. 나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자...뭐 그런거...사회는 혼자 살 수 없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그리시는 큰 계획안에 하나의 조각들 내지는 원자나 분자일 것이다. 결국 큰 전체에서 부분일뿐일 나 자신만의 길이란 신기루 일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내 개인의 삶이 너무 소중해서 남이 관여하는 것이 너무 싫었고 페이스북은 쳐다도 안봤는데, 미국와서 새로운 프레임에 맞추어 살다보니 많이 변했다.한인회 일이며 여러 단체활동도 하고 페이스북도 하게 된 것이 말이다.
각설하고 유명한 비올리스트로 한국에서 인기가 최고라는 리차드용재오닐을 처음 보았는데 호리호리한 실루엣의 그의 연주는 뜻밖에도 무언가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모든 예술은 기교만으로 이루어지지않는다. 그곳에는 감성과 영혼을 일깨우는 무언가가 있어야한다. 너무나 감성적이어서 깨질 것만 같던 내 청춘의 모습을 생각하면 상처투성이였다. 이상하게도 많은 상처들이 있었던 나의 작은 역사. 한국에서는 피를 흘리지는 않는 각종 전투들로 지쳐가는 나의 모습들이 있었다.
나는 두려웠다. 이렇게 아무런 휴식도 없이 그저 싸우다 상처투성이로 죽을 것 같아서. 무엇과의 싸움일까. 모략,편견, 오해, 견해, 관점, 논쟁 등등 이기더라도 지더라도 지나고 나면 무의미해지는 인간의 나약한 감정들 그리고 얄팍한 생각들. 나를 담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작아 보였다. 그런데 유일하게 내가 담기는 너무도 크셨던 아버지 마저 없는 그곳이 지루해져버렸다. 새로운 것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그러지 않으면 나는 죽어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 동안 나의 한부분은 죽어있었는데 클래식 연주를 들으며 그것을 느끼다니..
이날 부르흐의 ‘Romanze for Viola and Orchestra’ 멘델스존과 아렌스키 곡은 죽어있던 감각을 깨운 알람이었다면, 리차드 용재오닐의 파이널 곡 아스토로 피아졸라의 ‘Le Grand Tango’ 는 전율이었으며, 앵콜곡인 쇼스타코프비치의 왈츠는 그리움이었다. 우리 귀에 익숙한 왈츠 2번은 재즈를 접목한 곡으로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에 사용되며 엄청난 히트를 거두었었다. 그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김대승 감독이 제작한 영화<번지점프를 하다>에 사용되었었다. 그렇게 불현듯 그리운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눈을 감는다. 잊고 있던 감정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섬집아기'는 조용히 가라 앉은 슬픔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회귀해야할 고향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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