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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678m) 본문

등산/한국등산

마이산( 678m)

bakingbook 2010. 4. 27. 11:58

일시: 2010. 4. 24 일

장소: 마이산( 678m) 


마이산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와 마령면 동촌리의 경계에 있다.진안고원에 있는 2개의 암봉으로,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고도 했으며,

조선시대부터는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동봉을 숫마이봉(667m),

서봉을 암마이봉(673m)이라고도 한다. 동봉과 서봉은 약 20m 간격을 두고 있으며, 주위에는 부귀산·성수산 등이 있다.

소요과정: 함미산성입구-495봉-광대봉-고금당-나봉암(비룡대)-용두봉-탑사-은수사-탑영제-남부주차장

마이산을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진안읍 방향의 북부주차장으로 진입해서 수마이산 암마이산 사이의 정비된 등산로를 이용해 반대쪽의 은수사, 탑사, 금당사 등을 갔다 돌아올 수 있다. 반대로 마령면쪽의 남부주차장으로 들어가 반대의 코스를 갔다 오는 방법이다.

소요시간: 10- 4시

기반암은 수성암이며, 산 전체가 거대한 암석산이나 정상에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사방이 급경사로 이루어졌으며, 남쪽과 북쪽 사면에서는 섬진강과 금강의 지류가 각각 발원한다.
두 산봉은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북·서 사면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습한 북쪽 사면은 식생이 풍부하나 건조한 남쪽 사면은 식생이 빈약한 반면,
풍화작용으로 암석의 측면에 동굴 형태의 구멍이 생기는 타포니(taffoni)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북쪽 산록에는 사양제 등 저수지가 있으며, 높이 400m 이상은 계단을 이용하여 산정으로 통한다.
깎아세운 듯한 V자형 계곡을 이루는 자연경관과 은수사·금당사 등의 사찰을 중심으로 1979년 10월에 이 일대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 약 16.9㎢. 은수사는 숫마이봉 기슭의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으며, 조선 태조가 임실군의 성수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다가 들른 곳이라고 한다.
암마이봉 남쪽 기슭에 위치하는 탑사(塔舍: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는 자연석으로 절묘하게 쌓아올린 원추형기둥과도 같은 80여 개의 돌탑이며, 마이산 신 등을 모시는 탑이 있는 암자이다. 쌓아올린 지 100여 년이 지났으나,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아 더욱 신비감을 주며 중생들을 구제하고 만인들의 죄를 속죄한다는 뜻으로 만불탑이라고도 한다.
숫마이봉 중턱에 있는 화암굴 속의 약수를 마시고 산신에게 빌면 아들을 얻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은수사에서 남쪽 약 2km에는 금당사가 위치하며, 금당사 경내에는 은행나무에 조각된 금당사목불좌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금당사괘불(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4호) 등이 있다. 금당사 남쪽 1km 아래에 위치하는 이 산묘에는 단군 성조, 조선 태조·세종·고종의 위패를 모신 회덕전, 대한제국 말기의 애국지사·의병장 33위를 모신 영광사가 있다.
진안-천황문-은수사-마이산탑-금당사-진안, 금당사-탑사 왼편-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으나 급경사의 암벽길이다.
산정에는 평평한 공터, 돌탑 등이 있으며, 주변은 소나무숲이 우거져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마니산

이 아니다.

마이산.

마이 묵었다아이가.

마이산에서 하산하니

마이산이 날 무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암수로 나뉜 봉우리는 말 귀를 닮았다고도 하고

기가 넘친다고도 한다.

석산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북한산의 인수봉 같은 화강암 덩어리의 모습을 연상한다. 하지만 마이산은 좀 다르다.

하나의 돌덩이이면서 결코 하나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마이산이다. 아

니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개체의 연방, 마이산은 그런 정겨운 산이기도 하다. <<My 山>> 어찌 정겹지 않을 수가 있으랴!

마이산이라 하면 뭔가 모르게 신비로운 느낌을 발한다.

그 근원은 이색적인 모양의 산봉이 낳은 이미지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마이산의 깊숙한 젖가슴에 안긴 탑사의 돌탑이 발산하는 불가사의한 기운에 연유하기도 한다.

말의 귀처럼 보이는 그 두 산에 대한 것인데 그 전설은 이러하다.

아주 먼 옛날 두 산신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부는 하늘에서 죄를 지어 지상에 내려와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는데 반성하며 착하게 사는 것을 본 하느님은 다시 하늘로 올라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래서 하늘로 올라가기 전날, 남편산신이 아내 산신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없는 한밤중에 등천하자고 했다. 그

러나 아내 산신은 밤에는 무섭기도 하고 피곤하다며 한잠 푹 자고난 뒤 이른 새벽에 등천하자고 하였다.

결국 남편 산신은 그 고집을 꺾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에 하늘로 오르게 되었다.

마이산의 의미는 마이(馬耳)를 닮은 산이라 하여 말의 귀모양 산이란다.

진안읍쪽에서 봤을 때 뽀쪽한 봉우리가 수마이산이고 우측의 완만한 봉이 암마이산이라 한다.

보는 방향에 따라 외양이 완전히 변하는 마이산을 하나로 통일해 부르기는 쉽지 않을 듯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계절마다 붙이는 이름도 제각각이다.

봄에는 안개에 싸인 두 봉우리가 쌍돛배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울창한 숲 사이로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으로 치장한 말모습의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적 특성에도 봉우리에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 머금은 붓 같다고 해서 문필봉이라 부른다.

그 외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용출봉(湧出峰)이라 하였고,

신라 때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렀으며 조선초 속금산(束金山)이라 부르기도 하다,

태종이 남행(南行)하다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이름지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까지 얘기가 성립하려면 태종은 필히 가을단풍 철에 마이산을 찾아야 맞아떨어진다.

마침 자료를 뒤져보니 10월 하순의 단풍철이다. 마이산이라는 어사(御賜) 산명은 태종과 명산과 가을단풍의 삼합이 낳은 협연인 셈이다.

"동으로 달리는 천마는 이미 지쳤는가?
갈 길은 먼데 그만 쓰러지고 말았구나.
연인은 몸통만 가져가고 두 귀는 남겼는가?
두 봉우리 이루고 하늘로 솟아있네."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장군으로 왜구를 토벌하러 왔다가 마이산을 보고 이 시를 읊었다고 하고,
훗날 태종(이방원)이 이곳에 들러 부왕의 시를 읽고
"마이산(馬耳山)"이라 명하여 오늘에 이른다고도 한다.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자리하고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동쪽에 솟아있는 수마이봉은 667m, 서쪽에 솟은 암마이봉은 673m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마이산은 전체가 하나의 바위로 된 민둥산처럼 보이나 가까이 다가가면 관목, 침엽수, 활엽수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이산은 오름과 내림이 왔다갔다하는 완만한 육산으로, 독특한 바위들을 감상하며 갈 수 있는 재밌는 산이었다.

비룡대에서 바라본 남문 주차장 벚꽃길.

비룡대

오늘은 여름날 같이 더웠다.

이곳은 앞뒤 막힌 곳이 없는 곳으로 바람이 시원하기 그지 없어 냉장고 같았다.

비룡대에서 용두봉을 지나 탑사방향으로 하산.

수마이산은 경사가 너무 심해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

암마이산은 심하게 훼손돼 식생복원을 위해 2014년. 10월까지 출입금지 상태다.

(인용)지질은 진안읍 쪽의 마이산 주변은 선캄브리아기의 소백산변성암복합체에 속하는 화강암질편마암이며,

마이산에서 임실읍 주변까지는 중생대 백악기(白堊紀)말의 마이산역암(馬耳山礫岩)이다.
이러한 지질 분포나 지형으로 미루어 마이산역암의 퇴적환경은 이미 존재하였던 화강암질편마암이 백악기말 주변의 화강암류의 분출에 따라 융기된 뒤,

그 전면(全面)의 요지(凹地)에 쇄설물(碎屑物 : 작은 부스러기)이 퇴적되어 역암지역이 된 것이다.
따라서 본래는 상대적으로 더 높았던 화강암질편마암지역이 침식에 약하여 높이 350m 내외의 진안고원이 되고, 상대적으로 낮았던 마이산역암지역이 침식에 강하여 더 높게 잔존하여 기복(起伏)의 역전(逆轉)이 나타났다. 특히 마이산의 두 산봉우리는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여 진안읍 쪽의 북 사면과 마령면 쪽의 남 사면은 사면의 향(向)에 따라서 기후지형학적(氣候地形學的) 지형형성작용에 차이가 있다. 남 사면에는 지름 수㎝에서 수m에 이르는 풍화된 구멍인 타포니(tafoni 풍화혈)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 지름이 큰 까닭은 역암의 메트릭스(metrix : 자갈 사이의 충진물질)인 세립물질이 풍화되어 역이 빠져나감에 따라 나타난 것이다. 현재에도 남북 사면의 미기후(微氣候)의 차이에 따라서 습한 북 사면에는 식생이 번성하나 남 사면은 건조하여 식생이 빈약하다.(인용끝)

탑사와 천지탑.

숫마이봉은 급경사를 이루어 등산로가 없다. 탑사를 향해 하산.

탑사와 천지탑. 이곳은 약 100여 년 전 이갑용(李甲用)이 쌓아올린 80여 기의 돌탑으로 이루어졌는데, 불규칙한 자연석을 모아 원추형 혹은 기둥 모양으로 쌓은 것이다.


은수사마이산 기슭에 터를 잡은 사찰이다. 제일 아래 금당사를 지나 저수지를 지나면 그 유명한 탑사가 나온다.

탑사엔 기기묘묘한 탑 80여 기가 서 있다. 마구 쌓아 놓은 것 같지만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전국 각지의 신묘한 돌을 모아서 만들었다하니

그 정성만으로도 영험가득한 돌탑들이다. "마이산의 기가 가장 센 곳이 바로 천지탑 옆"이란다.

탑사에서 올려다본 마이산 봉우리는 여기저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

마이산의 사면에는 지름 수㎝에서 수m에 이르는 풍화된 구멍인 타포니(tafoni 풍화혈)가 많이 나타난다.

쉽게 바스라지면서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타포니(Tafoni) 지형이다. 타포니는 벌집 모양의 자연 동굴을 뜻하는 코르시카 방언에서 유래했다.
타포니 현상은 마이산 남쪽 사면에서 볼 수 있지만 북쪽 면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햇볕을 받는 남쪽 사면이 일교차에 의한 침식이 더 잘 일어나고, 북쪽 사면엔 얇게 흙이 덮여 있어 그렇단다.


은수사 가는 길

탑사에서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산허리를 난 길을 조금 오르면 수마이봉 아래에 은수사가 자리하고 있다.

탑사가 워낙 유명하게 알려져서 그 이름에 가려서 그렇지 사찰의 아름답기로 따진다면 은수사도 뒤지지않는다.

은수사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다.

누구든 세번 두드리며 자기 맘을 깨워보라.

은수사의 북 세번을 쳐본다. 북소리가 청아해서 머리속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난 단청의 무늬와 색감이 좋다. 단청에 관련한 서적도 읽은 적 있는데 저 무늬들이 다 의미가 있다. 다시 찾아봐야징.

수마이산을 남쪽 은수사 방향에서 바라본 모습.

태조 이성계의 '금척' 전설이 어린 은수사.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왜구를 물리친 이성계가 마이산에서 잠을 잘 때 나라를 잘 경영하라는 계시와 함께 금척을 받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여느 산의 입구처럼 산행객을 상대로 막걸리 파전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 길 양옆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이한 것은 좌판에서 돼지고기를 굽고 있는 풍경이다. 진안군은 새끼돼지 '애저'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마이산 봉우리가 물그림자 드리운 탑영제를 지나면 벚나무 울창한 예쁜 산책로가 이어진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갈 때가 되어 간다는데..

긍데

넘 빠르다.

서울은 만개하지도 않았는데 비가 오고 있다.

여린 벚꽃은 다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아름다움이 짧다는게 슬프다고

생각했더랬다.

지금은

벚꽃이 흐드러지는

길에 서보니

꽃은 기다리는 나무의 맘을 알 것 같다.

아니 봄을 기다리는 꽃의 마음을 알 것같다.

아름답게 피워보고자

무서리를 견디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지나온 것일게다.

아름다움이 짧다고 한탄할 것인가.

아름다움이 있다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인간의 마음이 가파르고 척박할 때

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 새삼스런 마음이

고맘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그것이 살아갈 이유가 되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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