逍遙
달팽이 안단테 /엘리자베스토바 베일리 본문
침대맡에 놓여있던 제비꽃 화분에서 조그만 달팽이를 발견하고 관찰하면서 외로운 병상에 위로를 삼게 된다.
이 책은 달팽이와의 1년을 보낸 저자의 에세이지만 달팽이에 대한 논문과 저서를 섭렵한 저자의 전문적 지식과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인해 문학적 향기를 풍기는 글이 되었다.
헤리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나 시몬베유의 <중력과 은총> 조에 부스케의 <달몰이> 같은 책들은 문학서인지 철학서인지 과학서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장르의 책이다.<달팽이>도 그러하다.
이 책의 뒤에 길게 이어진 참고문헌은 이책이 문학책인지 과학책인지 그 정체성을 헷갈리게 하고 도서관에서도 이책은 문학서적의 분류가 아닌 엄연히 자연과학 분류사이에 놓여있었다.
에세이기에 픽션은 아니고 달팽이의 충실한 관찰기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암울한 상황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아름다운 과정은 문학적 진실과 감동을 가지고 있었다.
간간히 작은 달팽이의 몸짓에서 달팽이의 심리를 읽어내는 저자의 감정이입이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게 할정도로 따뜻하기도 하였다. 이래서 에세이는 아무나 쓰지 못한다는 느낌...맘이 따뜻한 사람 20여년을 세상의 분주한 일상에서 사라져도 잊지않고 찾아주는 친구들을 가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달팽이는 오감중 시각 청각이 없다한다.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세계속을 점액질을 분비하는 빨판같은 다리로 느리게 느리게 이동한다. 그야말로 안단테 안단테...의 삶.
달팽이는 자기가 살던 숲에서 낯선 내방으로 강제로 옮겨지고 나서 이곳이 어딘지, 어떻게 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껍데기 안에 꼭꼭 숨어 있다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먹을 만한 식물조차 없는 사막 같은 환경이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을 게 분명하다. 달팽이와 나는 둘 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했다. 달팽이도 나처럼 어딘가에 강제로 버려지고 추방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부엌에 있는 냉장고 속에는 신선한 포토벨로버섯이 조금 있었다. 포토벨로버섯 한송이는 달팽이보다 50배는 더 컸다. 간병인은 버섯을 얇게 썰어서 한 조각을 유리용기 안에 넣어주었다. 달팽이는 그 버섯을 매우 좋아했다. 지난 몇주 동안 시든 꽃잎만 먹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만나 너무나 좋았는지 녀석은 며칠 동안 버섯 조각 옆에서 잠을 잤다. 낮동안에도 깨어나서 기지개로 켜고는 버섯을 조금씩 갉아먹다가 배부른 듯 하면 선잠에 빠지기도 했다. 매일 밤 버섯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더니 마침내 한주가 끝날 무렵 마지막 남은 조각마저 다 먹어버렸다.
봄이 여름으로 바뀌고 여름이 가을로 바뀌더니 어느새 눈이 내렸다. 하지만 어미 달팽이와 그 새끼 달팽이는 아직도 내 가슴 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미 달팽이는 내게 가장 좋은 길동무였다. 녀석은 한번도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적이 없었다. 또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기를 바란적도 없었다. 나는 달팽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고 잘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달팽이가 그저 묵묵히 미끄러지듯 기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고 깨달음이었으며 아름다움있다.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메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달팽이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었다.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삶을 지탱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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