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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한국등산

북한산 무명슬랩 릿지하다

bakingbook 2009. 10. 24. 21:55

 

2009. 10.18(일)

산행지 : 북한산(545봉과 연인길)



작년에는 원정산행을 했었지만 무박 산행의 피곤함 때문에 올해는 근교산을 주로 한다. 10시쯤 올라 저녁시간 무렵 내려오면 맞춤한 산행에 뒤풀이도 가능하고 담날 피곤하지도 않다. 게다가 서울 근교에는 아름다운 명산이 병풍처럼 둘러져있다. 삼각산은 인수봉 등 멋진 암벽으로 유명한 명산으로 입산로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오늘은 삼각산(북한산) 단풍이 절정이리라는 정보와 암릉보다는 흙길위주의 산행이라 안심(?)하고 산행길에 나선다. 그러나, 우리나라 등산인구 1위라더니 북한산 단풍구경 온 차량으로 사기막골 입산로에서 산행시간이 12시였다. 늦게 오른터지만 대장만이 아는 등산로에는 다른 입산객이 없어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암릉이 많은 북한산에서도 드물게 흙길과 단풍들이 그늘을 이루는 소로를 걸어가노라니, 친구와 이곳을 거니니 이것이 Walking on the cloud같다. 그러나.... 곧 Walking on the cloud는 Walking on the rock이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철없이 좋아한 것이었다.

인수봉 절경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늦은 점심을 맛나게 하고, 가벼워진 배낭에 룰루랄라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단풍과 계곡의 물소리가 어우러지는 환상의 등산로여서 환상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사진 찍다가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안좋은 왼쪽 어깨를 다시 짚게 되었다. 어깨 통증의 강도는 조금 둔했으나, 자꾸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이 징크스 때문에 내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올해 3월에 다친 어깨는 지금 심각하게 고장나 있어 다음달 MRI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지만, 다리는 괜찮아 그후 등산과 트래킹만 한다. 저번 도봉산에서 바위를 왼손으로 집다, 내 몸무게를 지탱못해 떨어지고 난후 어깨는 아프다 아물다 아프다 아물다 하는 중이다. 한의사는 내게 회전을 시키는 어깨 관절이 염증으로 들러붙은거 같다고 한다. 즉 석회화가 진행된거 같다고... 움직이지 못하는 뒤로 젖히는 운동을 해주지 않으면 어깨장애가 될 것이다.... 수영과 농구를 좋아하는 내게 올해는 정말 최악의 해, 근육이 긴장되면 수영을 해주면 풀어지고 농구를 하면 즐거웠는데 덕분에 근교산이란 산은 다 다니고 제주도 올레길 트레킹도 하게 되어 등산의 묘미에 눈을 뜬 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어깨 하나가 희생해서 나를 살린 것이니 악운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어쨋든 릿지화를 신기는 했지만 릿지는 할 생각이 없었다. 릿지라는게 바위에 발을 발톱만큼 디디니 손과 어깨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좋아하지만 밧줄을 잡을 힘도 없는 왼쪽 어깨를 생각하면 릿지는 무모한 모험이다. 그런데! 일행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45도 각도의 무명 슬랩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가 삼림 공익근무요원이 지나가다가 거기는 초등학생도 안가는 곳이라고 미친짓이라 한다. 인수봉 뒤의 숨은 벽 그곳에 자일을 걸고 있으니 ...ㅎㄷㄷㄷㄷ 내가 나 육체 상태를 믿을 수 없는데

산에서는 어느누구도 의지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고 누가 말했다. 주지도 받지도 말라고 ...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산이야 말로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어야한다고... 그래서 홀로 산행은 매우 위험하다.

산은 황홀하다가 인자하다가도 차갑고 광폭하게 변하는 곳이다. 단풍과 소로가 전자라면 암벽과 야등은 후자다. 도우미분들과 릿지화라도 없었으면 난 정말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가파른 바위위에 하늘을 아래로 하고 서있으면 진짜로 하늘을 걷는 것 같이 매력적이었지만 내 릿지의 경험은 이것으로 충분한거 같다. ^^

산은 밤이 되면 무섭고 차갑게 변한다. 어릴적 아버지와 오른 설악산이 그랬다. 오늘은 아버지의 유품중의 하나인 조그만 스위스제 렌턴을 유용하게 썼다. 열쇠고리만큼 작은 것....혹시나 하고 넣고 다니는 것이다.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긴장이 같이 몰려와 다음날은 온몸이 아팠다. 한의원에서 맞는 침과 부황을 맞고 나면 몇시간을 앓게된다.

운동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나에게 올해는 무척 터프하게 지나가지만...

나는 그 속에서 적응하며 조그만 행복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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