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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한국등산

남한산성 성곽길을 소요하다

bakingbook 2011. 12. 19. 16:31
일시: 2011.12.17 토

남한산성역-지화문- 수어장대-전망대

 

 




요즘은 원정산행을 줄이다 보니 (왠지 흥미를 잃었다고나할까나...) 근교에 있는 산을 찾게 된다. 특히 슬렁슬렁 걷기 좋은 곳. 조망 보면서 커피나 누릉지를 먹기 좋은 곳말이다.
남한산성만 이번주 두번 갔다. 그것도 강추위라고 호들갑떠는 마당에....
덕분에 남한산성의 아름다운 노을과 야경까지 감상했는데 렌턴을 준비안한 바람에 고글에 잃어버리는 실수도 있었다. 찾으려 가기에는 남한산성 외곽길이 넘 어두웠다.

보정역에서 출발, 모란역에서 환승해서 남한산성 역까지 전철로 실시간 30분 걸린거 같다. 생각보다 많이 안걸린 것.  날은 어제부터 강추위 시작. 남한산성역에서 남한산성입구까지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입구까지 도열해 있는 각종 음식점과 등산복판매점 등 예전과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긴 그때는 내가 올림픽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대학다닐 때 였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등산을 좋아하셔서 방이동에서 남한산성까지 버스 타고 다녀오시곤 하셨다. 그때 나도 한번 따라 간적이 있었다.

그때는 산을 오르는 것이었고. 오늘은 성곽 안에서 문을 따라 도는 것으로 서울시내를 조망하는 느낌이 색달랐다.
성안에서 거닐다가 성밖으로 걷는 길이 내가 남한산성을 걷는 방식이다. 오늘은 날은 추우나 전망대에서 청계산 관악산, 북악산, 북한산 도봉산까지 보이는 전망이 또렷했다. 남한산성은 상당히 낮은 산임에도 서울시내 산들이 다 조망되는 곳이라니 천혜의 수비산성임에 틀림없다...게다가 꼼꼼한 장군이던 이회에 의해 남한산성 건립이 늦어지자 이회가 착복을 했다느니하는 억울한 누명으로 사약을 받았다지 않는가..그의 죽음에 까마귀한마리가 오래동안 앉아있었다는 돌도 유적으로 남아있다.
성안이나 성 밖이나 쌓은 돌들이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탐에도 강건하다... 한번도 무너지지 않은 남쪽을 방위하는 성..남한산성에서의 소회는 갈 때마다 남다르다. 

내가 마치 2달 동안 청나라 군대와 대치하던 조선인들인 양 생각하며 걷노라니 남한산성이 꽤나 넓은 지역을 아울러 지어진 수비산성임을 알겠다. 인조가  청과 남한산성에서의 30일 항전하는 동안 성 밖의 백성들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영화<최종병기 활>에서 보면 민초들의 항전이 조금이나마 다뤄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조는 청나라랑 전투같은 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저 남한산성에서 숨어있었을뿐. 청태종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만 했으면 되는 것이였다.

청태종이 중국의 척박한 땅에서 발원한 오랑캐 였으나 중원을 움켜쥔 것은 유목민 특유의 근성과 뛰어난 전투력에 기인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와 맞선적이 아주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구려가 맞섰던 수나라나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에 패퇴했다지만, 세계사적으로 판단하면 아주 강한 군대중 하나였다. 무기 또한 뛰어났었던 것은 고구려와의 전쟁당시 문헌으로도 알 수 있다.

몽고야 물론 서방을 공포에 떨게 할 정도의 전투력이 있었지만, 청군은 중국 역사상 가장 강한 군대였다고 한다. 그런 군대를 맞아 인조와 그때 조정을 장악한 척화파들의 대항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도 되지 못하는 무모한 것이었다. 게다가 청 태종은 우리나라를 먹으려 하지도 않았다. 명과 싸우느라 바빴기 때문에 방해가 되지 않길 바랬을 뿐...그것은 청태종이 서신에서도 밝힌적이 있었다.

조선의 '존명 배금 '이라는 대의명분은 조선의 출발과 관련된다.

바로 고려왕조와 조선의 창건. 그리고 명의 무리한 군신 요구에 대한 고려의 대응.

원나라에 이어 중국을 통일한 정통 한족이라는 자부심의 명나라는 군신의 예를 지켜 공물을 요구하며. 원나라 시절 쌍성 총관부를 두고 다스렸던 철령이북의 땅(강원도 안변) 을 돌려달라고 떼를 쓰기시작했다. 중국은 한족은 항상 그랬다. 이것들은 중국의 주인이었던 적도 별로 없었으면서 주변 약소국을 오랑캐라 무시할 뿐 아니라, 큰 땅덩어리 관리도 잘 할줄 모르는 주제에 욕심만 많아 주변 나라를 야금야금 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것이다.

공민왕 때 원나라와 싸워 쌍성총관부를 쫒아내고 회복한 땅이었으니 터무니 없었다. 당시 우왕과 최영은 끝까지 저항하는 원라나 군사 때문에 명의 힘이 요동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고구려 옛 땅을 되찾고자 요동정벌을 계획했다. 애초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태조 왕건의 명분이 있었으니 그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외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최영을 죽이고 고려왕조를 무너뜨렸다.

고려 왕조가 그때 수명을 다해 떠나야할 때이긴 했지만....

조선은 사실 신진사대부가 일으킨 나라, 사대부들은 예로부터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겨왔으니, 이제 큰 나라는 명나라이니 망해가는 원나라에는 미련을 두지 말자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것이 이성계가 요동정벌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올린 상소문 ' 4대 불가론'의 맨처음에 나오는 글이다.

그 상소문의 내용을 보면 이성계와 신진사대부가 내세운 대의명분은 졸렬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으며

둘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부적당하고

셋째, 요동을 공격하는 틈을 타서 남쪽에서 왜구가 침범할 염려가 있으며

네째,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쓸 수 없고 병사들도 전염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

그런 사대부가 명이 망하고 청이 중국을 평정하여 큰 나라가 되었음에도 청을 오랑캐라 업신여기고 척화를 외친 것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다. 고려 무신 정권이 몽고에 30년은 항전하던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가 청나라의 군대에 의해 손쉽게 뚫려 봉림대군 일행이 사로잡히고말자, 무조건 항복하며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고구례를 행해야했다. 1637년 1월 15일의 일이었다.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 또한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초 강화도가 천혜의 요새인 것만 믿고 성주와 군대가 수비도 철저히 하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청나라 군대를 얼마나 얕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조와 사대부들은 그날의 굴욕을 잊지 못해 이후 아들과 손자들 며느리 집안 모조리 몰살시키는 상황에 이르고 조선의 외교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날의 굴욕을 담은 삼전도비가 남한산성과 멀지 않은 거리의 잠실롯데월드 유원지 석촌호수에 남겨져 있다. 그 비는 조선 총독부건물마냥 없애지 말아야한다. 절대.

조선왕조는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을 수도로 선택한다. 충청남도의 계룡산을 물리친 한양의 장점은 산세가 적을 막기에 유리하고 한강이 있어 뱃길을 이용할 수 있고 국토의 한가운데 있다는 장점 때문으로 삼국시대와 고려 때부터 인정되어 온 것이었다.

백악산을 뒤로 하고 남산을 마주 보며 왼쪽으로 낙산, 오른쪽으로 인왕산을 두고 건설한 경복궁과 아울러 궁궐을 에워싸는 궁성을 쌓고 4개의 대문을 만들었다.

경복궁의 동쪽 은 봄을 뜻하는 건춘문, 서쪽은 가을인 영추문, 남쪽은 여름의 '빛광'자를 넣은 광화문, 북쪽은 신무문이라 했다. 그리고 수도 한양을 에워싸는 성을 쌓아 1936년부터 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을 연결하는 40리에 달하는 성곽이 생겨났다.

성곽은 나라의 울타리로 백성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성안으로 드나들기 위해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숙정문( 북대문), 돈의문(서대문)의 4대문과 광희문, 혜화문, 창의문(자하문) 소의문 (서소문 )의 4소문도 만드는 등

한양은 철저한 계획도시다.

남한산성도 성곽을 쌓고 동서남북 왕래할 수 있는 문을 만들었다. 오르막 내리막 성곽을 따라가니 문이 차례로 지나간다. 성아래로 멀리 남산에서 관악산 북한산 높은 봉우리까지 조망된다.

남한산성에 서니 조선의 흥망성쇄가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 고단한 삶을 살아야했던 이름없는 민초들의 애환이 이 남한산성 안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하다.

 

남한산성에서 서울을 둘러싼 산들을 조망하고 일몰을 보다보니 성외곽으로 돌던중  멋진 야경을 보게 되었던 것은 행운이나, 렌턴도 없는데 해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간신히 로터리로 와서 낙선재에서 게
장정식을 먹었다. 몹시도 추운 저녁 인적도 드문 고풍스런 식당에는 모닥불이 있었다. 손과 발을 쬐다가
맛있는 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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