逍遙
바람도 쉬어가고 싶은 곳 본문
제주도 : 길
누군가의 모닝벨로 인해 눈을 뜨니 창 밖은 캄캄하다..어제 관음사에서 백록담을 거쳐 성판악으로 하산한 한라산 산행 후 완전 지쳐 혼절하듯 잠이 들었나 보다. 일출을 볼 수 도 있겠고, 어제 못본 천제연을 보러 산책을 갈 수도 있다..하지만...오늘 올레를 6, 7, 8 3코스로 돌겠다고들 하시지않나.
절대 그리 할 수 없을 게 뻔하지만 지겹도록 걸을게 틀림없으므로 산책 보류~~~ 라면이나 끓여먹을까 싶어, 복도로 나가니, 일행들이 벌써 라면을 끓이고 있다 . 정말 부지런바지런 이쁘기까지 한 남정네들이넹~ 우리방 그릇과 수저등을 준비하여 가보니 라면과 햇반 글고 바리바리 싸온 반찬들이 한상 그득하게 차려져있다.
아침에 뜨거운 라면과 구수한 누릉지로 요기하고 남정네들 설거지까지 풀코스로 서비스하는 동안 향긋한 커피 까정 마시니 올레트래깅을 위한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우리의 올레는 8코스 7코스 6코스의 쇠소깍까지...인데 갈 수 있으려나.
10시쯤 숙소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중문의 주상절리를 시작으로 7코스 올레길이 시작된다.
날이 맑아 걸으면서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한라산 백록담이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우리는 바다에 인접한 멋진 잔디 축구연습장을 거쳐 대포포구에서 홍삼,소라회를 먹고 아자나무군락지-월평마을-월평포구를 거쳐 범섬이 보이는 강정포구에서 6시쯤 일몰을 본 뒤 근방 식당에서 성게미역국을 먹고 올레를 마감했다.
지난 여름갔던 올레코스는 송악산을 거치는 10코스와 중문에서 화순으로 9코스 그리고성산에서 섭지까지의 1코스 였다. 10코스에서는 재작년에 갔던 마라도 항구를 거치게된다. 어린왕자의 별과 같이 조그만 섬인 마라도도 아름답다.
배가 불러 마라도의 유명한 해물 짜장면을 먹지 못한게 두고두고 아쉽다.
그리고 내 발을 휘감아 돌며 뒤굼치를 깨물던 ,사람이 그리운 아기 코리 강아지 계속 뒤를 졸졸 쫒아왔었다.
그 사진 찾아봐야겠다. 마이 컸을 거다. 아직 못가본 길이 많다...
그렇게 가려고 했으나 일정때문에 태풍때문에 가지 못한 무지개빛 고운 모래 우도...도.
올레길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가야할 길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
올레길은 바닷가를 따라 길이 없는 곳을 가는 것이라, 그늘이 거의 없어 지난 여름에는 거의 화상수준으로 탔었다.
겨울이라 바닷바람이 차가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주는 제주다. 바람까지 없어, 거의 초여름 날씨다.
가는 곳마다 귤농장에 새파란 미나리며 무밭이며 지금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배낭은 어제보다 무겁다.
아이젠이며 스패츠며, 산 위의 것들이 배낭 속에 다 있으므로...
바다는 미동도 않고 파랗기만하다..수평선쪽으로 요트들이 떠오른다...
우리 일행의 올레길은 정말 색달랐다..
우리는 저녁 비행기가 9시 35분이라 시간 널널하니 사진도 찍고 틈틈히 먹고 좋은 곳에서 놀멍쉬멍 가자한다.
바다풍광이 멋진 곳에 예쁜 별장이 있고 그 앞에 돌로 만들어진 휴식터가 아름다운 장소에 스님이 바다를 바라보고 계신다.
일상에 지칠 때 이곳에서 펼쳐지는 앞바다를 보면 근심이 날라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행은 그곳에 사진을 찍기위해 멈췄지만 일부는 벌써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흑맥주 한잔씩을 하기시작한다.
초여름 날씨의 제주. 여름 보다 더 맑고 훈풍이다.
파아란 하늘 흰뭉게구름 아래 황금빛으로 바스락 거리는 잔디에 누우니 너무나 신났다.
에메랄드 바다위에 떠있는 흑표범같은 현무암바위들 제주도 푸른 하늘과 수평선이 잇다아있는 곳.
얼굴을 간지럽히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과 햇살....
나는 바다소리를 들으며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내게 찾아드는 평화로움이 좋았다.
시간의 아우성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비워진 자리를 차지하는 온순하고 편안한 바람소리~그 순간만은 절대적으로 비어있는 상태다.
자유롭게 올 때 이곳은 꼭 다시 한번 들러보리라 생각하며 올레길은 계속된다.
8 코스는 포구에서 시작해 포구에서 끝나는 전형적인 바당올레 코스.
바다에 밀려 내려온 용암이 굳으면서 절경을 빚은 주상절리와 흐드러진 억새가 일품인 열리 해안길을 지난다.
해녀들만 다니던 거친 바윗길을 해병대의 도움을 받아 평평하게 고른 ‘해병대길’을 지나는 맛도 그만이다.
종점인 대평리는 자연과 어우러진 여유로움이 가득한 작은 마을. 안덕계곡 끝자락에 바다가 멀리 뻗어나간 넓은 들(드르)이라 하여 ‘난드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마을을 품고 있는 군산의 풍경 또한 아름답다.
가는 곳 마다 포토타임이고 잘익어 바닥에 널부러진 귤수확철이다. 지나가다가 귤농장 총각이 주는 자그만 귤을 먹으며 자연스레 해갈이 된다.제주도 귤은 쬐그만 것이 당도가 그만이다. 푹신한 검은흙길,모래해변길,해안의 용암바위길, 해변자갈길, 도로 아스팔트길 등 올레길엔 온간 종류의 길이 다 있다.
해변을 걸으면서 느끼는 탁 트이는듯한 상쾌함은 산행에서와는 다른 즐거움을 준다.
올레길엔 우리보다 앞서 길을 밟은 이들이 곳곳에 이정표를 남겨놓았다. 노란색과 파랑색의 리본과 페인트자국 ....
그 흔적을 따라가다가도 가끔은 길을 잃어버리기도한다. 하지만 괜찮다. ...
올레길은 그자체가 자유로운 길이며, 길이 아니다..사람들이 발길이 점점 이어지는 길 .
우연히 마주치는 곳에 머물고, 우연히 마주치는 곳의 사람들과 인사하는 길이니 그길은 소통의 길에 다름아니다.
그러기에 올레길은 산처럼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지만 울퉁불퉁한 길이 많다.
아주 쉬운 길만은 아니라는 것..누군가 맘에 맞는 사람과 같이 대화하며 걷는다면 더욱 좋은 길...
우리일행이야 당근 다 맴이 맞았다.
가다가 좋은 곳이 있으면 머물렀고, 이름 모를 항구에 다다라 소라 ,홍삼회와 한라산 소주도 먹으며, 강정포구에 이르러서 일몰을 보기도 했다.
7코스는 외돌개를 출발하여 법환포구와 제주풍림리조트를 경유해 월평포구까지 이어진 해안올레.
억새와 들꽃이 만발한 길이어서 아기자기한 감동이 깃든 코스다.
올레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자연생태길인 ‘수봉로’는 세 번째 코스 개척 시기인 2007년 12월, 올레지기인 ‘김수봉’ 님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2009년 2월에는 그동안 너무 험해 갈 수 없었던 '두머니물~서건도' 해안 구간을 제주올레에서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는 작업 끝에 새로운 바닷길로 만들어 이어, '일강정 바당올레'로 명명했다.
무건 배낭을 맨 우리 일행의 발걸음은 차츰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목표한 쇠소깍 까지는 어림없는 일이다.
갈매기떼가 쉬어가는 곳. 억새가 우거진 물가에 잠시 멈춘다.
피곤한 발의 느낌. 발을 딱딱한 등산화에서 꺼내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담근다. 나의 무건 몸을 지탱해주고
나를 가고싶은 곳, 어디든 데려다 주는 나의 발.... 극한을 걸은 것 같아도 신통하게도 너끈히 버텨준다.
하지만, 노곤한 어깨에서 아까 뿌린 파스냄새가 진동한다.
강정포구에서 일몰을 보고 나니 금새 날이 어둑해진다. 마을 식당에서 성게미역국을 먹었다. 제주도에서 반한 먹거리 갈치조림과 성게미역국...미역의 요오드가 피곤해서 목이 붓는데 좋을 것 같았다.
강정포구에서의 일몰을 끝으로 이제는 돌아가야할 시간,,, 길을 나오니 바닥에 올레라는 글귀가 쓰여져있다. 그길의 끝에 우리가 공항까지 타고갈 버스정류장이 있다.
강정에서 저녁을 먹은후, 공항리무진을 타고서 우리가 온길을 거슬러 가며 모두 파안대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9시간을 간 거리가 버스로는 단지 8분 거리였다.^^
이제 1시간쯤 비행기를 타면 서울로 도착할 것이고 우리는 제각기 흩어져 고단한 몸을 쉴 집에 갈 것이고 내일이면 일상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맘속에 제주도 푸른 하늘, 새하얀 백록담, 녹색 바다가 일렁이고 있겠지 말이다
떠나요 둘이서/ 힘들게 별로 없어요/ 제주도 푸른 밤 그별 아래~
그동안 우리는 오래동안 지쳤잖아요/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
후일담: 쇠소깎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천지연 폭포,이중섭 미술관과 그의 애끓는 편지들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올레길은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길...
돌과 억새 자연으로 덮힌 제주도 육지에 사람들의 길을 만들 때, 어떤 목표를 정해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 될진데, 누군가 만든 길이 목표가 될 순 없지...
올레를 작년 여름 올해 하면서 느끼는 점은 관광코스로만 돌던 제주도와는 다른 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업적인 것이든 애초 산타고니아의 길을 보며 올레를 착상한 개척자가 있었든 내가 이 길을 걷고 돌아와서 다시 생각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계절을 달리하며 걸을 때마다 어떻게 보면 똑같은 제주 바다와 용암절벽이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서있는 위치마다 내 느낌도 다르다. 그곳에서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님을 느낀다.......산을 좋아하기 전에 나는 길을 좋아했음을 새삼 깨닺는다.
제주 올레길은 아름답다. 그 말 외에 더 할 수 있다면 매력 있다.
그길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하늘과 바다와 바람과 산과 바위 그리고 나만의 길과 머물 수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기때문이다.
바람도 쉬어 가고 싶은 곳 그곳이 올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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