逍遙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길 /김희경 본문

독서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길 /김희경

bakingbook 2010. 2. 4. 19:07

올레길의 모티브는 산티아고이고, <연금술사>의 파올로 코엘료가 영감을 받은 곳도 산티아고라 한다.

산티아고 길이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아무거나 집어 왔다 ^^ 의외로 대박, 실감나고 재미있고, 사람이 담겨있다. (사람이 없으면 재미없더라)

<나의 산티아고>는 순례자의 길이라고 알려져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 ' 흔히 '카미노'라고 부르는 길위에서 저자가 만난 사람과 저자 자신의 '발견기다.

'카미노'는 길이란 뜻이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두제자 중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묻힌 곳으로 알려진 캬톨릭 성지다. 이 순례길의 역사는 천년도 넘었다고한다.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중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이르는 '프랑스길'이 제일 유명하다. 저자는 이길을 한달간 갔다고 한다. 물론 먼 길을 떠나는 자 다 나름의 무거운 이유들이 있다. 그 무거음이 가벼워질지 더 무거워질지는 모르지만말이다.

10kg이 넘는 배낭을 줄이기 위해 한달치 배낭에서 필수품들을 모두 쏟아버리고 7kg을 만들었는데도 아깨가 짖무르는 통증으로 고생하는 이야기, 길위에서 만난 천사 조지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배낭을 잘못매어 그렇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저자에게 배낭은 짐덩어리에 웬수덩어리였다. (어째 내 제주여행기 보는듯하다.) 유럽에서 좋은 트랙킹화의 필요성을 느꼈듯, 한라산 등반에서는 좋은 배낭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허리에 받쳐주도록 엉덩이 위에 배낭아 오도록 매야하고 또 받침이 튼튼해야한다. 멀리 높이 오르게 위해서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 그것이다.

길을 떠나기 전의 모습과 과정 그리고 도착과 후일담 등 시간적 연계속에서 저자가 변모하는 모습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배낭을 줄이기 위해 선글라스와 책과 mp3와 카메라와 갈아입을 옷과 세면용품을 다 빼버려서 당황스러운 적도 많으나, 이내 익숙해진 모습. 더럽고 습기차고 시끄러운 순례자용 숙소 알베르게에 잔뜩 질려 한달 숙박비에 해당하는 호텔에 묵는 모습. 거의 다 왔다 싶으면 또 뒤로 물러나는 신기루 같은 길...

무건 배낭에 대한 원망으로 주변의 길도 산도 보지 못하고 주변사람들과 인사도 나누지 않다가, 어느덧 지루하고 반복적이라고 느껴지던 주변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모습.

마운트 폴의 도움을 받아 힘든 길을 가는 도중, 폴도 없고 긴트랙킹에 별 생각도 준비도 없이 왔다고 어린 친구들에 대해 느끼는 짜증과 폴을 빌려주까마까 망서리는 자신에 대한 환멸감, 그러다 세면용품이 다떨어진 저자에게 혼쾌히 자기 것을 빌려주는 어린 친구들에게 대한 미안함. '너희들 보다 내 현실은 무겁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에 대한 부끄러움.

어느덧 홀로 걷던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솔직한 내면을 보여주게 되는 모습...

그리고 도둑맞을까봐 첫 알베르게에서 짐을 꽁꽁 싸맸던 도난 방지용 자물쇠와 호르라기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모습. 두려움과 불안을 상징하는 물건을 버림으로써 방어적이고 겁이 많은 자신과는 좀 달라지고 싶다는 다짐.

길의 도상에서 다국적 친구들과 의기투합한 친구들과 날씨 변화가 심한 갈리아 지방의 어느 야외 테이블에서 먹는 점심 .찬바람이 부는 을씬스런 중세의 마을에서 각자 배낭에서 꺼낸 딱딱한 빵만의 풍찬노숙의 가난한 점심. 빵을 꾸역꾸역 씹던 저자는 돌연 비틀즈의 노래 <내게 필요한 건 사랑뿐(All you need is love) > 를 흥얼거린다. 이내 모든 이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치즈뿐(All you need is cheese)!"이라는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

홀로 간 길에서 처음 만난 미국인 마이클에게서 커피를 얻어마시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사라'라는 말을 들은 저자, 산티아고로 가는 마지막 길을 함꼐한 겁장이 캐나다아주머니 마농에게 망서림 없이 돈을 빌려주는 모습.

마이클은 눈발이 날리는 첫 피레네 산을 넘는데 그녀를 도와줄 생각도 않고 먼저 가버린 무정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폭설예보로 14oom 피레네산으로로 가는 길은 금지 된 것을 알게되고 그 피레네 산을 넘은 것은 단 두사람 그와 자신임을 알게 되고 스스로 이룬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

파리 드골 공항에 내려 오스테를리츠역으로 이동하면서 내내 족쇄를 찬듯이 느껴졌던 중등산화가 익숙해 지고, 마지막에 등산화를 태우는 모습을 보며, '내 신발이 더 걷고 싶다고 하네' 말하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는 모습. 앞이 터졌지만 같이 고생한 등산화를 같이 서울로 돌아가야한다고 저자는 다짐한다.

인상깊은 만남들

길위에서 만난 이들은 한국인 유럽인, 호주인, 미국인, 캐나다인, 터키인 등 다양하지만 삶에 어떤 의문을 가진채 혹은 자신을 찾기위해 혹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추억때문에 찾아온 것. 왜 왔는지 뚜렷하게 설명할 수 없고 질문에 대답을 찾을 수도 없었지만, 진지하고 그리고 유쾌하다.

길 위의 복덕방인 마틴은 다국어를 할 수 있지만, 사랑하던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받고 고통에 시달리는 중. 너무 미운 부인이지만 아직도 사랑하고 있기에 그는 괴롭고, 홀로 있는 것에 익숙치 않기에 그의 주치의는 산티아고 길을 추천한 것....그는 산티아고가는 길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쿠르스 테 페로'에 결혼반지를 묻으려고 들고 온 것.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에서의 한 구절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며 괴로워할 수 밖에 없다' 는 가혹한 진실처럼 그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의 슬픔을 가지고 있다.

그덕분에 알게 된 이탈리아인 바르바라와 그녀의 검은개 프리다. 개와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 이들이 몇명있지만, 그녀와 프리다의 만남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그녀가 피레네 산에서 길을 잃고 헤멜 때, 나타난 검은 개가 바로 프리다였다. 그이후 프리다는 그녀의 산티아고 길에 동행하게 되었고, 그길의 여정을 마치면 그녀의 집까지 함께 갈 것이다.

'특별히 구하는 답은 없어요. 다만 카미노가 주는 걸 모두 받아 들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라는 바라바라. 바라바라가 저자의 카미노 루트가 새겨진 마운트 폴이 예쁘다고 하자, 저자는 프리다의 이야기에 대한 선물로 바라바라에게 주겠다고 한다. 서로의 폴을 바꾸고 사진을 찍는 카미노가 주는 작은 기적들의 체험.

영적인 체험을 꿈꾸면 혼자 온 그늘이 있던 애런, 말레지아에서 태어났고 캐나다에서 자랐으며 미국에서 일하는 그는' 어디에서 왔는냐'는 질문에 항상 헷갈려한다. 길 위에서 다시 마주치자 그늘이 싹 걷힌채 애런이 하는 말.

"아프리카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빨리 걷는 사람은 혼자 걷고, 멀리 걷는 사람은 친구와 함께 걷는다고,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것 같아.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거든."

그는 자신의 삶이 <스피드> 의 버스 같았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자기파괴적인 생각들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삶. 그는 카미노에서의 경험을 확장(expansion) 이라고 표현한다. 사회적 지위, 직업, 소유 가족 등 어떤 꼬리표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으로 존재하고 그런 자신이 남들에기도 받아들여지는 , 자기(self)의 확장...관계의 확장. 주변환경을 감촉하는 감각이 더듬이 처럼 확장되고 초원과 언덕 산길 개울 시골마을을 돈키호테처럼 가로질러 친숙한 관계를 맺는 감각의 확장..

하지만 저자는 의심한다. 일상의 힘은 늘 낯선 곳에서 얻은 깨우침을 뛰어넘는 것. 아름다운 순간은 항상 찰나인것이기에...

쿠르스 테 페로의 의식

길 위에서 만난 천사, 조지와 조할아버지들과 오른 지금까지 중 가장 놓은 곳인 고도 1500m의 산 꼭대기에는 '쿠르스 테 페로'라는 대형 철십자가가 있다. 마틴이 결혼반지를 묻겠다고 했던 그곳에서 저자가 치른 작은 의식. ...

저자는 지갑에 간직한 남동생의 사진을 묻었다. 6개월전에 돌연 세상을 떠난 남동생의 사진, 그녀는 남동생의 영혼이 기뻐할 곳에 묻어주려왔었다.부모님의 세레명이 적힌 둥근 돌 옆에 사진을 묻고 저자는 길 위에서 내내 결코 흘리지 않던 눈물을 흘리며 통곡한다. 그런 그녀를 죽은 누이를 위해 온 조지 할아버지가 위로해준다.

카미노에서 가장 높은 곳. 사람들의 선량한 소원이 가득한 곳, 부모님의 이름 옆에서 동생이 자유롭게 훨훨 나는 모습을 상상하며 가장 아름다운 곳에 동생을 혹은 '왜'라는 질문을 내려놓고 그녀는 안심한다. 불가항력적인 일들로 믿음을 잃어버린 상처입은 마음...믿음을 찾고자 하는 조지할아버지는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을 이해해야만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더 찾지도 않을 거야.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니까"

그녀는 믿음을 찾았는지는 모르나 편안함과 위로를 받은 느낌으로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 세상의 일부인 사람과 사물들이 그 조화안에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쿠루스 테 페로를 지나며 어렴풋이 돋아 난다. 물리학자 미국의 우주 비행사인 에드워드 깁슨은 우주에 다녀온 뒤 신은 패턴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주에는 만물에 질서가 부여되고 균형을 이룬다는 것. 인간은 그런 패턴의 배후에 인격적 존재를 상정하여 다양한 신의 이름을 붙였다는 그의 생각은'불가지론자, 모르는게 옳다고 말하는 적극적인 불가지론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이후 믿거나 말거나 하면서 '우주'에게 소원을 비는 일을 두번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소원은 두번다 이뤄진다....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스트레스에 잘 듣는 처방으로 '아름다움을 들이마시는 것(Drinking Beauty)' 있다. 인디언들이 학살과 파괴 속에서 자신들의 온전성을 기억하는 방법은 하나의 아름다움이 파괴될 때 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을 통해서였다. 구전되어 오는 신화와 전설 옛이야기가 현실의 고단한 인간 속에 자신의 온전성을 기억하도록 돕은 아름다움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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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도착지인 산티아고에 이르러 저자는 우울증에 빠진다. 더는 갈 길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집 담벼락이든 어디든 갈 길을 알려주던 화살표가 없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산티아고 길은 올레길의 파랑 노랑 리본과 달리 이정표로 만든 화살표가 참으로 다양하다. 집담벼락에 조개 모약의 문양을 이용해 만든 대형 화살표도 있고 , 돌로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일상에서도 길을 알려주는 화살표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레길에서 수없이 길을 잃어버린 예가 있어서인지 ^^

체감이 안되는 이야기다. 다양한 문양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 ,산티아고 길. 가보고 싶어진다.....

생각나는 것들....

1,에스테야에서 로스 아르코스로 가는 길목의 포도주 저장고 외벽에는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다.

2..비아나 산타마리아 성당 옆에 서있던 체사레 보르자의 동상 시오노 나나미가 <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에 썼던 이탈리아 군주다. 마키아 벨리가 <군주론>의 모델로 삼았다던 그는 원래 스페인 혈통에 그 근처에 벌어진 전투에 사망해 15세기 산타마리아 성당에 묻혔다고 한다.

3. 기쁨과 즐거움뿐이 아니라 슬픔과 우울함 , 비열함이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 오더라도 모든 감정을 피하지 말고 문밖까지 나가 웃으며 맞이하라. <여행자의 집/루미>

4.. 나 홀로 있는 곳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은 만나며, 나의 근심은 가벼운 웃음으로 깨어진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폴 엘뤼아르)

5. 안달루시아. 포스트 -카미노 증상으로 우울한 저자는 안달루시아로 이동해 기분이 풀린다.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이 도시들은 8백년간 지배해온 이슬람교도를 몰아낸 기독교인들의 구심점인 북쪽의 산티아고와 달리 남쪽의 그라나다는 반도에서 추방당한 무슬림들의 거점이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는 극도로 정교하고 섬헤사다. 몇세기 피비린대나는 전쟁으로 얼룩졌던 지금도 끝없이 반목하고 적대하는 두 문화 기독교와 이슬람의 무늬들이 길거리의 벽돌과 장식에 뒤섞인 곳 '우리는 얼마나 다르면서 또 얼마나 같은가"

그리고 무어인의 혼이 서성이는 알함브라 궁전이 보이는 노천 카페에서 밤늦도록 마시는 레드 와인 한잔.. 브뉘엘의 유명한 영화<안달루시아의 개> 그리고 스페인...유럽여행에서 가보지 못한 곳...

6. 산티아고가는 길에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색 밀밭과 포도밭의 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