逍遙
내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GObi)/라인홀트메스너 본문
그래
나는 늙은 등반가야. 그사실을 인정해야 해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더
이상 애써서 입증할 게 없었다.
그런데도 내 앞에 놓여 있는 산맥에 도달하는게 중요했다.
예전에 수없이 많이 했던 것처럼 그저 산맥만 넘으면 돼.
내가 산을 잘 탈 수 있다는 것은 수없이 많이 입증되었지만, 그 숫자는 지금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 숫자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은 이산을 넘는 게 중요하고, 그게 내가 해내야 하는 과제야, 과거는 아무것도 입증해주지 못해.
산은 오르는 매순간이 처음이고,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갈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것만이 중요해.
낭가바르트에서 잃은 동생의 이야기와 거대한 산 낭가바르트에 대한 기록이었던 < 벌거벗은 산> 이후
난 매스너가 히말라야에서 은퇴하여,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났던 고비사막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오십여일이 넘는 고비사막에서의 대장정에서 그가 얻은 것이라곤, 더 굽어진 어깨와 온전하지 않은 발의 혹사 그리고 더 깊게 패인 주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일컫듯 이 '늙은 등반가'를 황량한 고비사막 이제는 잊혀져가는 유목민의 삶으로 이끈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많은 산과 남극 사막까지 갔으나 '새로운 세계'란 없다고 단언한다.
하늘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면 우리는 떠날 이유가 없는가.
하지만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 있음에 나는 떠나고 싶어진다. 그것이 피에 새겨진 유목민의 천성일지라도...
세계사 시간에 몽골이 대제국을 건설하고도 이내 몰락한 이유에 대해서 그들의 유목민 습성을 원인으로 꼽는 것을 들었었다.
말위에서 생활하고 언제든 간편하게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유목민의 습성은 효과적인 전쟁 능력을 가졌으나, 정복한 땅에 정착하여 자신의 문화를 뿌리내리지 못하여 지배문화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런데...
인터넷 유목민이라는 요즘의 글로벌한 세상에서 정착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내 나라 내 민족이란 것은? 단순한 아집에 쌓여
자신의 열망을 감추고 멈추어 살아야할 까?
메스너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다고 한다. 정착하는 삶...그와 형제는 그것이 싫었고 십대때부터 암벽을 올랐으면 그의 다른 두 형제는 산에서 잃었다. 하나는 돌로메틴 다른 하나는 낭가바르트...
그 사건은 그들 가족에게는 커다란 상처였으며 메스너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그의 삶 내내 지속되는 고통이었다.
그의 책을 두번째 보는데 이제는 예순을 바라보고 네아이의 아버지인 메스너가 홀로 고비사막을 횡단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것도 그의 동생이며 그의 가족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기억이다.
이 이야기는 <벌거벗은 산>에서 구체적으로 적혔있다.
세계적인 등반가이자 문필가인 메스너의 손에서 씌여진 그의 고비사막 횡단기는 그렇기에 더욱더 특별하게 읽혀진다.
나는 이미 고비 사막 한 가운데 있었고 더이상 돌아갈 길은 없었다. 이 밤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잠을 자던중 몸에 익숙치 않은 경련이 나타났다. 때때로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경련이 온몸을 스치곤했다. 내가 곧바로 정신이 확 든 것은 아픔때문이 아니었다. 내 신체 기능이 더이상 말을 듣지 않아 모든 리듬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중략)
나를 가장 걱정시킨 것은 내 발의 장애였다. 벌써 오래전 일인데 발가락 몇 개를 읽고 오른 쪽 발꿈치가 부서진 게 내게 장애가 되었다.
걸어가는 도구인 내 발이 완전히 망가지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밤이 되거나 몹시 피로하면 불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고, 오늘 같은 날엔 발을 절뚝거렸다. 뼈가 비뚤어지고 발목과 힘줄이 복잡하게 구성된 내 오른쪽 발이 똑바로 선 몸의 무게를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면 고비사막을 횡단하는 나는 행군은 끝장나고 말것이다.
(중략)
서있을 때는 한쪽 발에만 힘을 주어도 되지만, 걸을 때는 왼쪽 발에 아픈 발의 무게를 실을 수 없었다. 걸을 때는 두 발이 모두 필요했다. 발이 무겁기만 해도 행군은 어려웠다.
모험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언제나 가정에 따른 질문일 뿐이다. 단지 모험을 감행하기 위해 얼어죽고 발을 다치거나 죽는 것을 감수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락, 동사, 갈증으로 인한 사망, 중상이나 다리 골절을 언제나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리 골절 같은 것은 집에 있다해도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와서 고려하고 정리하고 판단해 보아야 너무 늦은 일이다.나주에 할 일은 장애와 더불어 살아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매번 새로 결정하는 것이다.
온전하지 않는 불구의 발이 사막 횡단으로 마비되어가는 고통으로 감내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도심에 놔두고 그가 감행하는 고비사막 횡단 속에서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아니 이 기록을 읽으며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도심에 돌아와서 사막과 달리 풍족하고 물도 풍부하고 따뜻한 씻을 물까지 나오는데도 낯설음을 느낀다.
그것은 극악한 상황 언제나 보답을 바라지 않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유목민들에 대한 기억때문이다. 오늘을 생존하려 살아가는 척박한 유목민은 본질적으로 선했고 그러기에 그들이 보여준 장식이 없는 친절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던때문이었다. 오히려 사막을 버리고 도심으로 온 유목민들은 암담한 미래에 절망하며 알콜중독에 빠져도심에 널부러져있다. 유목민의 천성을 가둔채 정착한 더이상 사막과 사막을 넘나들지 못하는 유목민의 후예들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농경사회를 우위에 두게 된 것일까.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 그랬고 결국 침략하여 정착한 농경문화가 가르친 것이 그랬다. 땅을 빼앗고 그 땅에서 난 결실을 가지라고 그리고 대대로 물려주어 지배하라고.... 그리고 세계를 맘껏 뛰어다니던 유목민의 천성은 후진적인 것이니 가둬버리라고...그렇게 교육받아왔다.
고비를 넘은뒤
고비사막에서 몇 주 동안 사람 구경을 하지 못했지만 나는 거칠어지지않았다. 어떤 면에서 여행하기 전보다 마음이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오랫동안 나를 끌어 당겼던 먼 곳에의 유혹에서 풀려나 해방된 느낌이었다. 그 유혹 때문에 나는 결국 엄청나게 광활한 사막에 나신을 내맡겼던 것이다.
고비사막을 정복할 수 없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텅 빈 곳을 바라보는 것조차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텅 빈 공간과 평온함과 손님에 대한 환대가 너무도 많다. 인간의 본성이 그곳보다 더 평화로운 데는 없을 것 같았다. 고비 사막과의 만남이 내게는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고비 사막은 끝이 없을 테고 매년 더욱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머무는 고비 사막은 그 어디든 문명세계의 도시들 보다는 훨씬 인간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가축과 천막집, 마른고기와 우유차, 거의 잊혀지다시피한 유목민들의 행동양식 등은 내 기억 속에서 좋은 느낌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내게 환대받아야할 손님의 자격은 없었다. 손님에 대한 환대는 유목민들에게는 내적인 의무였다. 권리라는 것은 인간본성을 구성하는 당연한 요소가 아니다. 도시의 사회 모델에서는 권리가 협상의 대상이 되고, 인간들 사이에서는 법률로 확정된다. 그래서 결국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 규칙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목민들은 어디서나 배제되고 있다. 아무도 유목민들을 데리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몽골에서조차 유목민들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몽골인들은 오히려 유목민들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부끄러워한다. 원시적이고 시대에 뒤져서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몽골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나는 유목민들과 함께 있을 때 안전했다. 오히려 도시에서 살 때는 그렇지 못하다. 고비사막을 돌아다닐 때 나는 행운에 기댄 것이 없다. 우리 모두 사막에서 독자적으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존재이기에 수도 없이 많이 느끼는 두려움과 싸워 행복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었느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우리에게 나누는 법을 가르쳤다. 공감은 결국 불안을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나누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1854) (0) | 2011.08.12 |
---|---|
검은 고독 흰 고독/라인홀트 메스너/이레 2007 (0) | 2011.08.01 |
8000m의 위와 아래(8000m Druber und Drunter 1954)-등정의 진실 (0) | 2011.07.18 |
벌거벗은 산/라인홀트 메스너 (0) | 2011.07.17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덕일/김영사 (0) | 2011.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