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가바르트 단독 등반으로 모처럼 얻은 에베레스트의 성과를 망칠 수도 있다.
게다가 일반사람들은 그를 '쇼의 명수'라고 하고
친구는 "너는 어무나 빨리 불타 버리고 말거야"라는 충고를 하기도한다.
여러가지 충고와 의혹 질투에도 불구하고 그는 낭가바르트를 가야만했다. 그것도 혼자서...
에베레스트 단독 등반으로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그가 산행을 그만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오로지 내게는 산을 오르는 일이 즐거울 뿐이다.'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칭찬을 받아도 그것으로 삶에 대한 그의 허기를 채울 수 없었던 바로 그 이유로 라인홀트 메스너는 '운명의 산' 낭가바르트를 단독으로 등반하기로한다.
베이스캠프에 두 명의 친구를 두고 홀로 떠나는 낭가바르트에서의 사투. 간발의 차이로 눈사태를 피한 그는 험악한 다이마르 거대한 벽을 올라 살아 돌아왔다. 14좌 여성최초등정의 시비를 앓고 있는 오은선도 결국 '살아돌아온다는 것'의 중요함을 역설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위험한 암벽과 빙벽 고산등반을 무산소로 단독등반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메스너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살아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히말라야의 신들이 등정을 허락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동생을 잃고 절망에 빠진 그의 옆을 지켜주었던 우쉬와의 이혼은 가정을 이뤄 가족에 정착하려했던 그에게는 절망을 의미했다. 그가 혼자 살기로 결심하며 운명을 받아들이기로하자 절망과 자기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낭가바르트가 있었다.
낭가바르트 단독 등정을 앞두고 산악인들이나 기자들의 질문은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계획한 대로 틀림없이 해낼 자신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8000m 세 개의 봉우리에서 모두 실패했지요. 그러나 그 일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
"당신이 구하고 있는 경험은 오직 등반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생활영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경험이라는 것은 모든 일에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른 일은 등반처럼 위험하지는 않겠지요."
"적어도 다른 일은 등반 만큼 자신에 대해 깊은 성실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특히 최종단계에서 그렇지요. 이곳에서는 자신에 대해 관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높은 산에서는 그렇게 안 되지요. 8,000미터의 고소에서 자기 힘 이상의 것을 하려 든다면 목숨을 잃고 말겁니다."
그는 등반에서 경험이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고비사막을 횡단하면서 증명하였다. 높고 험한 산이어서, 물도 없는 황량한 사막이어서라기보다 세상의 시선에 의해 혼란스러비 않은 자기자신을 마주칠 수 있는 도전이었기때문이리라...짐작해본다.
"이번 단독 등반이 산사나이로서 당신의 생애에 클라이맥스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리고 그것이 의미있는 일로 보이나요?"
"의미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질문은 낭가바르트 정상이 바라보이는 곳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다만 나 스스로 자문자답할 수 있을 뿐이지요."
"(중략)그들은(원주민)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저 높은 곳에 자기 몸을 옮겨 놓을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지만 저 위에 있지 않다고 누가 말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다른 두 개의 길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요? 다시 말해서 하나는 실제 가야 하는 길이고, 또 하나는 마음 속에 그려 볼 수 있는 길이니까요."
"나는 그 두 길을 하나로 봅니다."(p55 )
"나는 암벽을 오르는 동안에는 정신이 온통 한군데로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불안이나 의심이 생길만한 틈이 없다. 그때 만큼은 고독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어려운 고산과 루트를 도전한 데에 있어서 일반이보다 불안이나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많은 불안이나 의심이 있기에 고도의 집중이 필요한 암벽을 했던 것이 아닐까.
티케
낭가바르트 정상에서 쓰러지지않으려면 내 자신을 다시 찾아야만 한다. 나 스스로 꿈을 향해 도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단지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이렇게 여기 앉아 있는 동안 나는 과연 이 산을 혼자서 오를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혼자서 밑에서부터 저 높은 정상까지.
걷는 기술은 옳은 길을 가는데 있다.
그 길에는 친구가 있고 그 길에서 너는 강해진다.
할 수 있다면 마음이 가는 쪽으로 가라
자기 길을 찾아갈 때
힘이 되고 방향이 되며 목표가 된다.
아무것도 그누구도 너를 막지 못한다.(쿠에타 벨루테의 모하메드 타히르)
두려움을 모르는 것 같은 현세의 철인 라인홀트 메스너는낭가바르트 단독 등반 보고서인 <검은 고독 흰 고독>에서 이렇게 말한다.
10년전만해도 내게는 두려운 일이 많았다. 헤르만 불과 발터 보나티, 그들의 8000미터 봉과 아콩가구아 남벽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불가능한 일들이 모두 이루어진 지금, 내 자신의 꿈만큼 이루기 어려운 일도 없는듯하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꿈을 좇곤 했지만 이제는 나스스로의 꿈을 향해 도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런 그가 '숙명의 산을 만나게 된것은 벨첸바흐, 메르클, 베히톨트, 바우어 등이 쓴 '독일인의 숙명의 산'에 대한 원정보고서에서였다.
고다이 까지의 길은 끝이 없었다. 마침내 길이 꺽이는 곳에 이르자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낭가바르트가 보였다. 남벽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넋을 잃었다. 벽의 높이는 무려 5,000미터. 아마도 이 ㅣ상에서 가장 거대한 절벽이리라. 소름끼치는 급사면 너머로 만년설이 뒤덮인 정상을 쳐다보려면 고개를 힘껏 뒤로 젖혀야만했다. 그야말로 우리들이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모습이었다. 비할 데 없이 장엄한 이 산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너무도 작게만 느껴졌다. -빌리 메르클 ,<<낭가바르트로 가는길>>
이제까지의 고산등정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 단독등반에 대한 그의 방법론이 움투게 되는 이야기를 함에 있어, 밖에서의 시선은
메스너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히말라야 14좌가 모두 등반되었다는 사실에서 메스너의 단독등반과 무산소 등반의 의미여부를 판단한다. 단순히 최초라는 타이틀을 위해서 세간의 이목을 끌기위해 산을 오른다면 메스너에 의해 알파니즘이 완성된 지금 14좌를 누가 등반하느냐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진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서 나라가 온 힘을 기울여 고산등반을 했던 역사는 나찌쯤과 관련이 많았다. 그렇게 하면
국가의 영예요, 그들 인종의 우월성이 입증된다는 생각...에 고산등정은 국가적 사업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특정한 이들에게만 허락된 고산을 일반인들에게도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놓은 것... 그것이 메스너의 공로일 것이지만, 이 또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개인적 욕망이던 야망이던, 그것이 낭가바르트 라면 게다가 단독등반이라면, 더이상 개인적인 것에 국한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것을 메스너도 알았을 것이라고밖에는 첨가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메스너라는 등반가를 <벌거벗은 산> 을 통해 알게된 후 그가 쓴 책<고비..>에서< 검은 고독 흰고독 > 까지 읽기를 즐기는 까닭은... 죽음의 지대를 경험한 이가 쓰는 실감나는 이 기록이 또한 그가 오른 산만큼 아름답게 씌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극한의 지대 죽음의 지대에서의 사투를 읽노라면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디선가 산림욕은 몸안을 씻는 것이라 했던가. 그것처럼 내 영혼은 정화를 필요로하고 그런때는 산을 가거나 등반가들의 기록을 읽는다.
산은 거대하고 무서운 그러나 아름다운 벽이다. 우리에게 놓여진 벽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넘기도한다. 왜 일부러 목숨을 걸고 거대한 벽을 오르는 걸까...많은 이들은 단순히 질문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나도 끼어있었다. 지난날...
"누가 등반하기 전과 후의 뇌세포 수를 세어봤지? 어쨋든 나는 때때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깨닺는 데는 남아잇는 세포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산이 아름다워서 오르는 거냐'는 우슬라의 질문에 그는
'그것도 여러 이유들 중 하나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환희의 순간에 사람은 자신 안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다 는 그의 글 속에 가장 큰 이유를 고백하고있다.
그들의 비판속에 담겨진 질투는 삶의 절망이 산위에서는 참회로 바뀐다는 것을 그들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환희의 순간에 사람은 자신 안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낭가바르트 빙벽을 오르던중 융기되어 오버행을 이룬 빙벽 아래 그는 비부약을 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등지고 혼자 오르는게 아니다.
이렇게 여기 앉아 있으면 나는 산의 일부가 된다. 때문에 어떤 행동도 신중하게 해야된다.
미끄러져서도 안되며 눈사태를 일으켜서도 안되며 크레바스에 떨어져서도 안된다.
나는 여기 쌓여 있는 눈과 바위와 구름의 감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철학이 필요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죽음까지도 이해하게 되니까...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또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중략>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진실을 얻게 되었다.
고독이 정녕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 날 그렇게도 슬프던 이별이 이제는 눈부신 자유를 뜻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이제 고독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나의 힘이다.
책에서 깍아지른 벽을 오르지 자일과 피켈만으로 오른 낭가바르트에 대한 기억은 참으로 짧다. 그 무거움에 비하면 오히려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길지경이다. 그의 낭가바르트에 대한 기록에서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낭가바르트를 오르기 전 상처입고 아파하고 있었으며 ,오르고 난 후 그 모든 것이 치유되었다는 점이다.
극한 상황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아니다. 극한 상황은 또 다른 현실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 줄 뿐이다.
약초에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는데, 나에게 등산은 일종의 약초와 같은 것이다.
** 라인홀트 메스너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메스너는 등반을 철학 이상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우리 시대 최고의 등반가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돌로미테 산군을 오르며 등반을 익혔고, 20대에는 알프스를 500번 이상 등반했다. 이후 1970년 낭가파르바트 등정을 시작으로, 1986년 그의 마지막 목표인 마칼루(8,463m)와 로체(8,516m)를 무산소 등정하면서 14좌 완등이란 대업적을 이룩해냈다. 1970년 낭가파르바트 등정 후 1982년 가셔브룸2봉 등정에 이르기까지 8개봉 등정에 성공한 그는 자기 능력의 한계를 확인해보려는 의도에서 14개 고봉 완등 목표를 세상에 공표한다. 그리고 4년 뒤인 1986년 로체를 등정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8,000미터 급 14개 고봉 완등이란 위업을 이룩한 것이다. 그는 무려 18회나 8,000미터 급 봉우리의 정상에 서 ‘세기의 철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메스너는 단순히 8천미터 봉의 정상을 수집하는데 그치지 않고 1970년대 히말라야 등반사에 혁혁한 기록을 남겼다. 8,000미터에서 최초의 알파인스타일 등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가셔브룸 1봉 등정(1975년)을 비롯하여 세계 산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1978년), 그리고 난제로 남아 있던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1978년) 등 히말라야 등반의 변화를 주도했다.